혼자 자라는 것은 없다

혼자 자라는 것은 없다 Nothing Grows Alone

Part 1

흙이든 사람이든, 끝까지 파고드는 자에게는 언젠가 속을 내주기 마련이라고 준호는 믿었다.

도시에서 농업을 공부한 그가 시골로 내려온 것도, 그 믿음과 넘치는 하나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을 첫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도시에서 책만 파던 애가 흙에 대해 뭘 알겠어?" 누군가 준호의 등 뒤에서 그렇게 .

준호는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농담을 하나 던졌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더 뿐이었다.

그는 그들의 자신이 외지인인 탓으로만 여기며, 실력을 증명하기만 하면 곧 풀릴 문제라고 속으로 계산했다.

언덕 너머까지 펼쳐진 그의 눈에 풍경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정복해야 할 거대한 숙제로만 보였다.

그날부터 그는 흙을 한 줌씩 쥐어 성분을 살피고 마을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돌며,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줄 그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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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그렇게 준호가 자신의 때를 벼르던 어느 날 새벽, 늙은 김 씨의 외양간에서 한 마리가 밤새 앓기 시작했다.

밤사이 갑자기 고꾸라지는 바람에, 김 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김 씨는 오래된 방식 그대로, 손바닥으로 배를 짚어 가며 묵묵히 그 곁을 지켰다.

준호는 곧장 수첩을 펼쳐 송아지의 하나하나 시작했다.

"열이 높고 사료를 거부하는 걸 보니, 이건 소화기 질환에 ."

그러나 책에서 익힌 지식은 딱 거기까지가 , 어떤 처방을 어떤 순서로 써야 할지 살아 있는 짐승 앞에서는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준호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소리 내어 인정하고, 결국 김 씨의 오랜 경험에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번갈아 뜬눈으로 돌본 지 사흘째, 송아지는 조금씩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다.

준호는 그 회복이 자신의 진단이 아니라 김 씨의 손끝에서 비롯되었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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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고비를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진짜 시련이 밭에서 들이닥쳤다.

이름 모를 벌레 떼가 여린 갉아 먹으며 밤낮으로 .

시들어 축 늘어진 널브러진 들판을, 그저 발만 구르며 지켜볼 뿐이었다.

준호는 이 벌레만 골라 없앨 방법을 찾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끼니를 거르고 잠을 줄여 가며, 그는 밭에서 긁어모은 자료를 또 분석했다.

마침내 그는 흙과 이로운 벌레는 건드리지 않고, 오직 골라 방법을 찾아냈다.

며칠 만에 밭이 되살아나자, 그를 향하던 눈초리도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그의 조금씩 마을 사람들에게로 번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느 아침에는 문 앞에 이름 없는 나물 한 접시가, 또 어느 날에는 삶은 옥수수가 놓여 있곤 했다.

준호는 그 말 없는 인사가 어떤 칭찬보다 크다는 것을, 도시에서는 미처 배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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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가을걷이를 앞둔 어느 저녁, 김 씨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준호의 방문을 두드렸다.

송아지를 살려 줘서 고맙기도 하고, 다 큰 녀석이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들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잔을 받아 건네려던 순간, 준호는 그만 손이 미끄러져 바닥에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는 사색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크게 .

깨진 병 조각을 보며, 실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 믿어 온 그의 머릿속에서는 낡은 계산이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김 씨는 껄껄 웃더니, 둘둘 말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병 하나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사람 안 다쳤으면 됐지."

바닥을 훔치던 준호는, 마을의 줄곧 자신을 읽어 왔을 뿐, 그들이 그저 서툰 젊은이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병 하나를 덕분에, 그는 치르지 않아도 될 값을 오래도록 치르며 살아왔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얼마 뒤 가을이 무르익자, 언덕까지 굽이굽이 들판은 온통 황금빛 일렁였고, 밤새 앓던 그 어느새 어엿한 소로 자라 그 뛰어다녔다.

김 씨가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그의 큰 소리로 치켜세웠지만, 정작 준호의 가슴을 채운 것은 그 칭찬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서툰 그의 농담에도 이제는 누군가 픽 웃어 주는, 더 이상 않은 그 자리의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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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느라고because one is busy/absorbed in doing (often to the neglect of something else)

준호는 이 벌레만 골라 없앨 방법을 찾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Bent on finding a way to strike down only these insects, Junho went whole nights without a wink of sleep.

-는 바람에because of a sudden, unintended cause (usually with a bad result)

송아지가 밤사이 갑자기 고꾸라지는 바람에, 김 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Because the calf had suddenly collapsed in the night, Kim was forced to keep a wide-eyed vigil until morning.

-(으)ㄴ/는 탓에owing to (a bad cause); laying the blame on

그는 그들의 냉대를 자신이 외지인인 탓으로만 여겼다.

He chalked their coldness up entirely to his being an outsider.

-(으)ㄴ 덕분에thanks to (a good cause or someone's help)

병 하나를 깨뜨린 덕분에, 그는 치르지 않아도 될 값을 치러 왔음을 깨달았다.

Thanks to breaking that one bottle, he saw how long he had been paying a price he never owed.

-고 해서partly because of this and that; among other reasons

고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들렀다는 것이었다.

He'd dropped by, he said, partly out of thanks and partly out of curio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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