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의 빈 의자

이발소의 빈 의자 The Empty Chair

Part 1

손님이 끊긴 지 오래인 문을, 병철 씨는 그래도 아침마다 열었다.

낡은 회전 간판은 멈춘 지 오래였고, 거울 앞 가죽 의자도 온종일 비어 있곤 했다.

그래도 그는 날마다 가위와 빗을 정갈하게 닦아 제자리에 두었다.

젊은 시절 이 의자에 앉았던 얼굴들을, 그는 아직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오랜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아내를 먼저 보낸 뒤로 그의 저녁은 유난히 .

낮의 , 밤의 적막은 뼛속까지 시렸다.

손님도 없고 해서, 그는 아침이면 가게 앞 참새 얹어 두곤 했다.

포르르 날아든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빈 가게의 유일한 .

이따금 그는 마당에 나가 찬 바람을 텅 빈 들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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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그러던 어느 봄날, 낯선 청년이 문을 밀고 들어섰다.

이런 시골 이발소에 젊은 손님이라니, 그로서는 여간 아니었다.

청년은 도시에서 사진을 찍으러 왔다며 카메라 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이 오래된 이발소의 궁금해서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남의 낡은 가게를 무엇하러 사진에 담겠다는 것인지, 병철 씨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청년의 진지한 태도에, 그는 이내 경계를 풀고 느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옛이야기를 한 한 마디 천천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청년은 그 이야기를 한 대목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공책에 옮겨 적었다.

"처음엔 그저 지나쳤는데, 자꾸 이 골목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오랜만에 나눈 긴 대화가 병철 씨의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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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그해 겨울, 마을에 난데없는 사흘 밤낮으로 쏟아졌다.

길이란 길은 모두 끊겨, 홀로 사는 노인들의 당장 걱정이었다.

병철 씨는 눈에 갇힌 이웃 노인들의 안부를 누구보다 깊이 .

그는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매서운 바람에 절로 이맛살을 문을 나섰다.

지난가을 손수 거둬들였던 찧어 쌀자루에 담아, 그는 눈길을 헤치며 이웃집을 하나하나 돌았다.

쌀자루를 건네받은 노인들은 언 손으로 그의 손을 한참이나 붙잡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는 새 잊지 않고 채워 두었다.

눈보라 속을 오래 오가느라 온몸이 젖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조금도 시리지 않았다.

이웃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동안만큼은, 그를 오래 짓누르던 도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아주 오랜만에 깊고 따뜻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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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이듬해 봄, 청년이 엮은 사진집이 조용히 세상에 나왔다.

뜻밖에도 낡은 담은 사진들이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서점마다 책을 발길이 이어졌다.

급기야 한 방송국까지 지난겨울의 이야기를 취재하러 찾아왔지만, 카메라 앞에 선 그의 뜻밖에도 짧고 .

"이웃이 굶을까 봐 한 일인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요."

남을 도운 일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그는 오히려 .

출판사는 그에게 정당한 몫을 , 다달이 얼마간을 부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정작 데운 것은 그런 돈이 아니라, 사라질까 두려웠던 얼굴들과 낡은 가게가 한 권의 책으로 오래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청년은 훗날, 이 사진들이 제 꿈의 새로운 되었다고 전해 왔다.

그 청년 덕분에, 오래 닫혀 있던 그의 세계에도 다시 볕이 드는 듯했다.

이제 그는 텅 빈 의자를 바라보면서도 좀처럼 얼굴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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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았/었던a recollected-past modifier: 'that once did / used to be', recalling a completed action or state

젊은 시절 이 의자에 앉았던 얼굴들을, 그는 아직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The faces that had once sat in this chair in their younger days—he remembered them still, one by one.

-곤 하다used to / would (repeatedly) do — a recurring habitual action, often in the past

거울 앞 가죽 의자도 온종일 비어 있곤 했다.

The leather chair before the mirror would sit empty all day long.

-고 해서partly because…, among other reasons — one cited reason standing in for several

손님도 없고 해서, 그는 아침이면 가게 앞 나뭇가지에 참새 먹이를 얹어 두곤 했다.

Since there were no customers anyway, each morning he would set out sparrow feed on the branch in front of the shop.

-더라고요reporting something one personally witnessed or realized (colloquial, spoken)

처음엔 그저 지나쳤는데, 자꾸 이 골목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At first I just passed it by, but this alley kept lingering in my mind, you know.

N 덕분에thanks to, owing to (a good cause or someone's help)

그 청년 덕분에, 오래 닫혀 있던 그의 세계에도 다시 볕이 드는 듯했다.

Thanks to that young man, sunlight seemed to fall once more even into his long-shuttered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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