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
What It's Worth
민준이 삼 년 만에 고향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가방 안에는 할아버지의 에 어울리지 않는 서류 한 장이 접혀 있었다.
그것은 큰 식품 회사가 보내온 제안서였고, 그는 솔직히 그 서류를 앞세워 할머니를 설득할 작정으로 내려온 셈이었다.
늙은 개가 어둑한 눈으로도 그를 대번에 알아보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그의 품으로 .
삼 년이나 발길을 끊은 사람을 이토록 반기는 짐승 앞에서, 민준은 어쩐지 낯이 뜨거웠다.
마당 한쪽에는 갓 거둔 상자째 쌓여 있었는데, 그 종류가 놀랍도록 .
흙은 여전히 검고 기름졌고, 물기를 머금은 뿌리채소마다 결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끝내려고 마음먹고 온 이토록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를 조금 불편하게 했다.
할머니는 삼 년 전보다 부쩍 야위신 데다가, 혼자서는 그 너른 밭을 도무지 감당하지 못하실 나이였다.
그러니 땅을 정리하고 할머니를 편히 모시는 편이 낫겠다고, 그는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설득해 온 터였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1
이튿날 낮, 그 회사에서 나온 김 과장이 낡은 승용차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위압적인 사람이 아니라, 외운 듯한 설명을 조심스레 읊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민준 역시 도시의 작은 몸담고 있었으므로, 큰 회사에 밀려나는 처지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김 과장이 내민 훑어보던 민준의 눈이, 한 줄의 숫자에서 문득 멈추었다.
서류에 적힌 수확량과 면적이 실제보다 한참 낮춰져 있었던 것이다.
도시에서는 몇 천 원짜리 물건에 쓸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였지만, 정작 할아버지의 땅은 이런 눈감고 넘기려 하고 있었다니.
따끔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분노가 아니라 계산이었다.
숫자가 만큼 그것을 빌미로 값을 올려 받아 내면 그만이라는 계산이, 부당함을 바로잡겠다는 마음보다 앞섰다.
"이런 작은 농장은 어차피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김 과장의 그 말은 얄밉게도 흔들릴 만했다.
큰 것에 떠밀리는 작은 것의 형편을, 민준은 자신의 회사에서 이미 지겹도록 겪고 있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밤이 되자 두 사람은 대청에 상을 펴고, 손수 기른 것들로 조촐한 을 차렸다.
민준은 그해 처음 거둔 가장 좋은 열매를 골라 할아버지 .
평생을 이 땅에 노인에게, 흙 한 줌은 도시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것이었다.
상을 물린 뒤, 민준은 할아버지가 밭일 적어 두었던 낡은 서랍에서 꺼냈다.
해마다의 수확과 시세가 또박또박 손으로 적힌 그 , 땅의 진짜 값을 증언하는 가장 증거였다.
회사의 번드르르한 서류보다, 민준에게는 그 해진 공책 한 권이 오히려 훨씬 더 느껴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땅을 팔자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할머니였다.
값을 후하게 쳐줄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할머니는 이제 싸울 기운이 없다며 주름진 손을 천천히 내저을 뿐이었다.
손주를 죄책감으로 이 흙에 붙들어 매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뒤에 감춰진 진심이었다.
한 사람의 정직한 평생을 거짓 숫자 몇 줄로 후려친 그 , 뿐만 아니라 명백한 .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그날 밤 민준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고, 처마 끝에서는 밤새 가는 비가 듣고 있었다.
애써 눌러 두었던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마침내 소리 없이 .
편의를 효도로 포장한 채 땅을 넘긴다면, 그것은 결국 할아버지의 평생을 내다 파는 일이었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그 거짓을 바로잡기는커녕 자신마저 그것을 이용하려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새벽녘, 밤새 처마를 두드리던 빗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
마당으로 나서니, 우물가에는 한쪽이 낡은 예전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이제 그는 힘없는 쪽이 상대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농사를 짓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하는 대신, 그는 우선 이 거짓된 값으로는 팔지 않겠다고, 땅의 제값부터 제대로 다시 매겨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안서를 나란히 내려놓으면서도,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 그는 끝내 확신할 수 없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Vocabulary
Grammar notes
할머니는 부쩍 야위신 데다가, 혼자서는 그 너른 밭을 감당하지 못하실 나이였다.
Grandmother had grown much thinner, and on top of that she was at an age when she couldn't manage that broad field alone.
김 과장의 그 말은 얄밉게도 흔들릴 만했다.
Manager Kim's words were, irritatingly, enough to shake his resolve.
할머니는 싸울 기운이 없다며 주름진 손을 천천히 내저을 뿐이었다.
Grandmother, saying she had no strength left to fight, only waved a wrinkled hand slowly.
그 감정서는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명백한 모욕이었다.
That appraisal was not only inaccurate but a plain insult.
그 거짓을 바로잡기는커녕 자신마저 그것을 이용하려 들었다.
Far from setting the lie right, even he had moved to make use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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