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얼굴
The Borrowed Face
소리는 남의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광장 구석에서 지나가는 이들의 걸음걸이며 말투를 내면, 낡은 모자 안으로 동전 몇 닢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나 다름없다고 여겼고, 가난한 인 소리 자신도 그 말을 굳이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 초라한 재주를 재능이라 불러 준 이는 늙은 무언극 배우, 선생님 한 분뿐이었다.
"너는 남이 아니라 네 슬픔을 연기할 때 가장 빛난다."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늘 소리에게 큰 무대로 나아가라고 .
그런데 지난달만 해도 멀쩡히 연습실에 나오시던 선생님이, 얼마 전 갑작스러운 병으로 말았다.
그녀를 믿어 주던 단 한 사람마저 곁을 떠난 셈이었다.
착한 는 결혼하면 광장 일 따위는 접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권하기도 했다.
그 편안한 삶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무대의 불빛에 마음만은 어쩌지 못했다.
국립극장이 새 배우를 뽑는다는 소식이 선생님을 잃은 슬픔 위로 겹쳐 들려온 밤, 소리는 지원서를 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1
오디션 날, 무대 앞에는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가 표정 하나 없이 앉아 있었다.
가 지원자의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 놓치지 않을 만큼 는 것은, 소리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날 나눠 준 대본은 이 어마어마한 데다가, 통째로 외울 시간까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무대 한복판에는 사람 몸집만 한 모형이 장치에 매달려 천천히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무대 담당자들은 공연 도중 사고를 위해 그 무거운 모형을 천장에 단단히 .
지원자는 저 에게 쫓기는 사람의 공포를 오직 만으로 그려야 한다고 했다.
무대 뒤 좁은 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소리는 문득 이 화려한 곳이 자신 같은 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나 도망칠 곳은 없었고,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소리의 바로 앞 순서는 정민이라는 사내였다.
정민은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좋아서, 위원들과 이미 안면이 있는 듯 여유로웠다.
그가 위원석을 향해 미소를 흘릴 때마다, 소리는 좋은 집안이란 늘 자기 앞을 보이지 않는 벽 같다고 느꼈다.
드디어 소리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천천히 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부터 소리는 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쫓기는 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숨을 삼키며 뒷걸음질 치는 이 어찌나 생생했던지, 가 정말 천장에서 내려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심사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그 짧은 순간, 냉정하기 이를 데 없던 는 분명히 .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연기에 들어갔던 위원들은, 뒤늦게 을 하며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규정은 오직 실력만을 합격의 삼는다고 못 박고 있었지만, 소리는 종이 위의 근거가 늘 정민 같은 이들의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그 만큼은, 어떤 서류로도 꾸며 낼 수 없는 진짜였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가 모두 끝난 뒤에도, 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서류상의 조건만 따진다면, 합격은 당연히 정민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원들을 단 한순간이라도 진짜로 지원자는, 그날 소리 한 사람뿐이었다.
합격자 이 극장 벽에 나붙었고, 그 맨 위에 소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소식을 들은 는, 이제야 그녀가 왜 그 불빛을 포기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가난한 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소리를 부끄럽게 하지 못했다.
남을 내며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소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란 결국 남의 슬픔과 두려움을 제 몸으로 옮겨 내는 일이었던 셈이다.
조명이 다시 켜지고 거대한 가 천천히 내려올 때, 객석의 사람들은 이번에도 기꺼이 주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Vocabulary
Grammar notes
지난달만 해도 멀쩡히 나오시던 선생님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Just last month, the teacher who had still been coming in perfectly well died of a sudden illness.
그녀를 믿어 주던 단 한 사람마저 곁을 떠났다.
Even the one person who had believed in her was now gone from her side.
흉내란 결국 남의 슬픔을 제 몸으로 옮겨 내는 일이었던 셈이다.
Mimicry, in the end, had effectively been the work of carrying another's sorrow into one's own body.
대본은 분량이 어마어마한 데다가, 외울 시간까지 부족했다.
The script was staggering in quantity, and on top of that there was far too little time to memorize it.
정민은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좋았다.
Jeongmin was not only skilled but also came from a good family.
선생님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Her teacher ended up dying of a sudden i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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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questions on the who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