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없는 저녁상

심판 없는 저녁상 A Supper Without a Verdict

Part 1

골목 끝, 낡은 세탁소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 작은 부엌이 들어서 있다.

이곳이 언제부터 ‘’라 불릴 만한 곳이 되었는지는, 사실 누구도 딱 잘라 말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그 시작이 무슨 거창한 뜻이 아니라, 한 무더기의 이었다는 사실이다.

몇몇 이웃이 매주 병과 캔을 내다 놓고 함께 분리하다 보니, 어느새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을 끈으로 묶고 사소한 손놀림이, 실은 사람과 사람을 엮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던 어느 봄, 민재가 이왕이면 이웃과 저녁까지 지어 먹자고 제안하면서 지금의 저녁 모임이 .

첫날 저녁상에 둘러앉은 사람은 겨우 다섯이었다.

그런데도 낯선 이들 사이에는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공기가 돌았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들어 주는 동안, 그 자리는 조금씩 단순한 ‘모임’ 이상의 무엇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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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모임이 입소문을 타고 커지면서, 뜻하지 않은 이 불거졌다.

스무 명을 넘어선 데다가 물가마저 올라, 재료비를 어떻게 감당할지가 문제였다.

윤 씨는 팔짱을 끼고 앉아, 공평하려면 기준부터 세워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오늘 저녁만 해도 열몇 가지 재료가 들어갔으니, 각자 먹은 만큼 내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그 계산 앞에서 느낄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수미는, 밥 한 끼 먹으러 와서 형편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했다.

윤 씨의 말투는 흡사 법정에서 그것이어서, 몇몇은 은근히 마음이 상했다.

의견은 좀처럼 않았고, 말까지 거칠어지자 애써 온 저녁상의 온기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민재는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고, 양쪽의 말에 번갈아 가며 조용히 귀를 .

그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이 식탁에서 아무도 밀려나지 않는 일이 더 급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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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긴 말을 자르고, 민재는 잠자코 앞치마를 둘렀다.

그날 저녁 메뉴는 치즈를 듬뿍 넣은 감자탕이었다.

그가 커다란 냄비에 치즈를 천천히 , 고소한 냄새가 좁은 부엌을 가득 메웠다.

그 냄새는 다투느라 잊고 있던 사람들의 슬그머니 .

한 솥의 밥을 나누다 보면 미운 마음도 풀리기 마련이라고, 민재는 늘 믿는 편이었다.

정말로, 국물이 뜨거울수록 굳어 있던 표정들이 조금씩 .

오래 없다던 옆집 할머니마저 두 그릇을 비웠다.

누군가 “이러다 다 망가지겠네”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식탁 여기저기서 낮은 웃음이 번졌다.

조금 전까지 날을 세우던 사람들이, 같은 냄비에 숟가락을 담그며 국물을 나누고 있었다.

밥을 나누는 그 단순한 행위가, 오래 묵은 소리 없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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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배가 부르자 언성은 절로 낮아졌고, 그토록 사나웠던 재료비 문제도 뜻밖에 싱겁게 풀렸다.

낼 수 있는 사람은 형편껏 내고, 어려운 사람은 다음에 설거지로 갚기로 하자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놀랍게도, 가장 윤 씨가 먼저 그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를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도 손해 보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그는 짧게 덧붙였다.

오랜 세월 남을 자리에 앉아 온 그에게도, 그 저녁상은 낯설고 따뜻한 배움이었던 모양이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남은 을 깔끔하게 나누어 묶었다.

며칠 뒤 골목 가게 앞에서, 윤 씨가 수미의 밀린 말없이 대신 치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았으면 에서 눈길 한 번 주고받지 않았을 사이였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함께한 저녁 몇 끼뿐이었지만, 골목의 공기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작은 안에서, 누가 옳은지 가리는 형편을 캐묻는 없이,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새 하나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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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는 데다가on top of, in addition to (a stacked reason)

참석자가 스무 명을 넘어선 데다가 물가마저 올랐다.

On top of the attendees passing twenty, prices too had risen.

조차/마저even (the last or least-expected thing)

오래 식욕이 없다던 옆집 할머니마저 두 그릇을 비웠다.

Even the grandmother next door, long without appetite, emptied two bowls.

만 해도take ... alone (as one example); just ... by itself

오늘 저녁만 해도 열몇 가지 재료가 들어갔다.

Tonight's supper alone took over a dozen ingredients.

-(으)ㄹ수록the more ..., the more ...

국물이 뜨거울수록 굳어 있던 표정들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The hotter the broth, the more the stiffened faces eased.

-기 마련이다is bound to happen, naturally follows

한 솥의 밥을 나누다 보면 미운 마음도 풀리기 마련이다.

Share one pot of rice and even hard feelings are bound to come l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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