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건 없는 오후
No Particular Reason
골목 끝에서 십 년째 작은 온 민혁에게는, 누가 아무리 값을 쳐도 내주지 않는 한 칸 있었다.
그 칸에 꽂힌 것은 사실 책이 아니라, 이십 년 넘게 그가 간직해 온 옛 공책이었다.
젊은 시절 문학을 처음 그 깊이에 사로잡혔던 그는, 그 마음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국어 교사가 되었다.
세월이 오래 흐른 뒤에도, 많은 그를 좋은 기억했다.
그에게 시험지 위의 점수가 아니라, 세상을 읽어 내는 하나의 눈이었다.
그러나 학교의 하루는 늘 중심으로 돌아갔고, 아이들은 소설 한 권을 끝까지 읽을 여유조차 내기 어려웠다.
좋은 문장 앞에서 눈을 빛내던 아이가 이듬해면 시험 준비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그는 해마다 못내 안타까웠다.
결국 그는 내려놓고, 이 조용한 골목에 지금의 열었다.
이제 그는 문을 여는 어울리는 책을 한 권씩 골라 주며 하루를 보낸다.
좋은 알아보는 일이 좋은 알아보던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요즘 자주 느낀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1
비가 오래 내리던 어느 오후, 낯익은 얼굴 하나가 젖은 어깨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
십 년 만에 마주한 그 얼굴은, 앞자리에 앉아 소설을 읽던 옛 서연이었다.
서연은 대학을 마치자마자 이름 있는 회사에 , 처음에는 부서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제법 밝게 지냈다.
좋아, 입사 이 년 만에 지방 했다.
그런데 회사가 , 그녀는 지난해 끝내 가 되고 말았다.
"선생님, 오늘은 딱히 있어서 온 건 아니에요." 문가에서 우산을 접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냥 옛 얼굴이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민혁은 아무것도 캐묻지 않은 채, 따뜻한 차를 우려 그녀 앞에 조용히 놓았다.
김이 오르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서연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찻물이 미지근해질 무렵, 서연은 안정된 회사에만 들어가면 삶이 다 정리될 줄 알았다며 지난 몇 해를 천천히 풀어놓았다.
그러나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속에서,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갔다.
여전히 좋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웃는 법마저 어느새 낯설어져 있었다.
회사를 나온 뒤로 그녀는 거의 매일 들러 신청했지만, 넣은 곳에서는 면접은커녕 짧은 답장 하나 받지 못했다.
"이젠 어디에 지원하나 마나예요." 서연이 식은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불안이 깊어진 그녀는 한동안 병원을 오가며 받았고, 오래도록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날이면, 자신이 어딘가에서 크게 길을 잘못 든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민혁은, 코앞에 두고도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던 열일곱 살의 서연을 떠올렸다.
그해 그녀가 제출한 , 반 전체를 통틀어 그의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글이었다.
글 맨 끝에 적혀 있던 한 문장을 그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했다. "언젠가 저도 되고 싶어요."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지 않는 그 세월에 바랜 공책 한 권을 꺼내 왔다.
그것은 바로, 서연이 열일곱에 쓴 그가 한 장 한 장 모아 둔 공책이었다.
서연은 공책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이제 와서 다시 써 봤자, 뭐가 달라지겠어요."
"길이 완전히 막힌 듯 보일지라도, 네 문장이 마음을 흔들던 그 힘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은 끝이 아니라, 길이 잠시 방향을 바꾸는 하나의 뿐이야."
서연은 오래도록 대답하지 못했지만, 식어 있던 눈빛 속으로 희미한 하나가 되돌아와 있었다.
며칠 뒤, 그녀는 작은 얻어 책상을 들이고, 첫 한 줄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쓰다 지쳐 모든 것이 느껴지는 밤도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듬해 봄, 한 우연히 그녀의 글을 자리를 제안해 왔다.
훗날 민혁은, 그날 서연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 새 일자리가 아니라 다시 써도 좋다는 한마디였음을, " 없다"던 그 말속에서 뒤늦게 읽어 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Vocabulary
Grammar notes
아이들은 소설 한 권을 끝까지 읽을 여유조차 내기 어려웠다.
The children could scarcely find even the room to read one novel through to the end.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는 면접은커녕 짧은 답장 하나 받지 못했다.
From the places she sent her résumé she got, far from an interview, not even a short reply.
이젠 어디에 지원하나 마나예요.
By now, applying anywhere or not comes to the same thing.
이제 와서 다시 써 봤자, 뭐가 달라지겠어요.
Even if I take it up and write again now, what would change?
길이 완전히 막힌 듯 보일지라도, 그 힘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야.
Even though the road may look wholly blocked, that power has not vanished as well.
Take the final quiz
3 questions on the who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