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잔
The Third Cup
큰 회사의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확인한 순간, 준호는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것을 느꼈다.
형은 벌써 몇 해 전에 성공한 길로 들어섰지만, 준호 자신의 앞날은 늘 안개처럼 만 느껴졌다.
오래된 집안의 이라는 자리는, 큰 기대와 조용한 무관심 사이 어디쯤에 놓여 있었다.
남들은 부러워할 결과였지만, 정작 그것을 손에 쥔 뒤로 그는 도리어 더 깊은 공허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자신이 진짜 무엇에 마음이 끌리는지, 그 를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며칠을 방 안에서 뒤척이던 그는, 문득 대학 시절의 노교수를 떠올렸다.
선생님이라면 이 텅 빈 자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일러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도시를 조금 벗어난, 오래된 나무들이 마당을 둘러싼 조용한 집에 홀로 살고 있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1
문을 열어 준 선생님은 준호의 을 받아 문 옆 낡은 옷걸이에 걸었다.
“가 제 발로 나를 다 찾아올 줄은 몰랐네.” 노교수의 목소리에는 오래 묵은 반가움이 배어 있었다.
좁은 마루에는 손때 묻은 책들이 벽을 따라 나지막이 쌓여 있었다.
선생님은 물을 올려 차를 우리더니, 찻잔을 세 개 꺼내 나란히 내려놓았다.
마주 앉은 사람은 둘뿐인데, 잔은 로 셋이었다.
준호가 그 세 번째 잔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설명도 없이 세 잔에 고루 차를 따랐다.
준호는 합격 소식을 전하면서도, 기쁨보다 이 앞선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 저는 제 앞날을 도무지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온통 의 속도를 좇는데, 사람들은 그에게도 어서 그 대열에 끼라고 듯했다.
선생님은 두 손으로 잔을 감싸 쥐고, 잠시 말없이 창밖의 마당을 내다보았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세상은 이 잔들처럼 짝으로 딱 나뉘지는 않는다네.” 선생님은 세 번째 빈 잔을 준호 쪽으로 조금 밀어 놓았다.
준호가 니 속도니 하는 시대의 조바심을 털어놓자, 선생님은 이란 결국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고 답했다.
“이 아무리 빨라져도, 사람이 속으로 던지는 물음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아.”
정작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로 꿰는 자기만의 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선생님은 손때 묻은 낡은 공책을 펼쳐, 서로 무관해 보이는 낱말들 사이에 그어 놓은 수많은 선을 보여 주었다.
흩어진 지식을 하나로 일은, 바로 그런 사소한 을 찾아 잇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자꾸 이어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흩어져 있던 점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떠오른다네.”
선생님은 세 번째 잔에 다시 차를 따르며, 대답 없는 물음의 자리를 하나 남겨 둠으로써 비로소 생각이 자란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 동안, 준호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생각들도 처음으로 어렴풋한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는 오랜만에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그날 이후로 준호가 선생님 댁을 드나드는 걸음은 눈에 띄게 .
몇 번이고 그 조용한 마루를 드나들다 보니, 그는 어느새 집에서도 잔을 로 놓는 자신을 발견했고, 선생님의 담담한 태도가 자기도 모르게 몸에 있음을 깨달았다.
오랜 망설임 끝에, 준호는 손에 쥐고 있던 안정된 회사 자리를 스스로 마음먹었다.
저녁상 앞에서 그 말을 꺼내자, 아버지는 들고 있던 수저를 상 위에 내려놓았고, 방 안은 한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형은 젊은 나이에 지역 이 되어 집안의 자랑이었던 터라, 아버지는 인 준호마저 그 길을 따라 주기를 바라 온 것이었다.
가족의 반대는 거셌지만, 예전 같으면 그를 짓눌렀을 두려움은 어느새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떠나기 , 선생님은 그 손때 묻은 공책을 준호의 두 손에 가만히 쥐여 주었다.
“이 안에 든 것들을, 나는 평생에 걸려서야 겨우 붙잡아 냈다네.”
“삶의 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아마 이 낡은 종이들 사이에 숨어 있을 걸세.”
준호는 그 공책을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오래 머문 그 집을 나섰다.
그의 앞날은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제 더는 예전처럼 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단번에 짝으로 나누어 떨어뜨리는 대신, 그는 의 잔 하나를 곁에 남겨 두는 법을 조금씩 익혀 가고 있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Vocabulary
Grammar notes
그것을 손에 쥔 뒤로 그는 도리어 더 깊은 공허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Once he held it, he only ended up sinking into a deeper emptiness.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자꾸 이어 보다 보면, 흩어진 점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떠오른다.
If you keep tying together things that seem unrelated, the scattered dots rise into a single picture.
대답 없는 물음의 자리를 하나 남겨 둠으로써 비로소 생각이 자란다.
It is only by leaving open a seat for the unanswered question that thought grows.
그 마루를 드나들다 보니, 그는 어느새 집에서도 잔을 홀수로 놓고 있었다.
Going in and out of that room, he found he had come to set his own cups in odd numbers at home.
이 안에 든 것들을, 나는 평생에 걸려서야 겨우 붙잡아 냈다네.
The things in here — it took me an entire lifetime to barely pin them down.
삶의 원리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이 종이들 사이에 숨어 있을 걸세.
If there is anything worth calling a principle of living, it is hidden among these pages.
Take the final quiz
3 questions on the who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