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이 익는 시간

논이 익는 시간 What the Field Knew

Part 1

지현은 넓은 이 사방으로 펼쳐진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여름이면 위를 건너온 바람이 뺨을 스쳐, 콧등이 .

겨울밤에는 따뜻하게 데워진 바닥에 배를 붙이고 할머니 곁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새벽마다 “우리 지현이, 밥은 먹었냐” 하고 물으며 부엌으로 나섰다.

그 시절 지현이 아는 세상은 과 마당과 뒷산이 전부였다.

작고 느린 곳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루하루는 부족함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지현의 마음은 늘 더 넓고 빠른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고등학교 내내 그녀는 반에서 손꼽히는 놓친 적이 없었다.

마침내 지현은 서울의 한 대학 에 합격해, 열아홉의 봄에 고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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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서울은 밤에도 좀처럼 잠들지 않는 도시였다.

지현은 극장 간판이 즐비하고 언제나 뒷골목에 좁은 방 한 칸을 얻었다.

학생이라는 이름표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부모님은 전화를 걸 때마다 좋은 받으라고 그녀를 .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고등학교 의 서늘한 공기를 떠올리게 했다.

선생님도 시험이 끝날 때마다 그녀를 로 불러, 떨어진 등수를 하나하나 따져 묻곤 했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들은 세상을 위아래로 나누는 하나의 커다란 처럼 느껴졌다.

성공이란 결국 그 표에서 한 칸이라도 위로 올라서는 일을 뜻했다.

지현은 사람을 으로 줄 세우는 에 조금씩 지쳐 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보다 한 칸이라도 높은 자리를 향해 쉼 없이 자신을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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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이 년이 지나 다시 가 시작되자, 과제와 시험이 처럼 밀려들었다.

견디기 힘든 밤이면 지현은 학교 앞 에서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김이 자욱한 천막 안은 좁고 시끄러웠지만, 그 온기만은 잠시나마 진짜였다.

시험을 잘 본 날의 은 을 넘기지 못했고, 그 짧은 흥분이 식으면 늘 더 큰 불안이 뒤따랐다.

어느새 그녀에게는 잠시 쉬기가 죄를 짓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못 들은 척하며 자신을 더 .

그러던 초가을의 어느 밤, 창밖에서 진짜 이 도시를 뒤흔들었다.

빗줄기 너머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빛났지만, 그 찬란함 어디에도 그녀의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책상 앞에서 글자가 자꾸만 흐려지던 그 밤, 지현은 결국 소리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 사이에, 그녀는 시험이 끝나는 대로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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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시험이 끝난 다음 날, 지현은 첫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을 걷자 젖은 흙냄새가 훅 끼쳐, 어릴 적처럼 코끝이 다시 .

예전보다 한결 작아진 할머니가 사립문 앞에서 그녀를 맞자, 지현은 “할머니, 는 드셨어요?” 하고 먼저 물었다.

늘 자신의 밥을 챙기던 할머니에게 밥을 물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간밤의 은 할머니의 도 그냥 두지 않아서, 가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물꼬를 터, 물이 빠지기를 잠잠히 기다렸다.

“논이란 게 급하게 군다고 가 빨리 자라 주는 게 아니야. 그저 기다리다 보면 때맞춰 알아서 누렇게 익는 거지.” 할머니가 무심히 말했다.

여름내 비바람을 견디고 이삭을 맺어 온 그 이 쯤은 거뜬히 참아 냈다는 것을, 지현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그녀는 정작 무엇을 향해 그토록 달렸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이란 그저 느리게 걷는 재주가 아니라, 제 때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힘이었다.

이튿날 식구들은 오랜만에 강가로 짧은 를 다녀왔고, 가을볕에 반짝이는 강물은 조금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지현은 가방 속 교재를 끝내 펼치지 않았고, 그녀의 은 떠나올 때와는 이미 사뭇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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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기 (nominalizer)turns a verb into a noun serving as the subject or object of a sentence

잠시 쉬기가 죄를 짓는 일처럼 느껴졌다.

Even resting a moment felt like committing a sin.

-고 말다to end up doing something, often with a sense of finality or regret

지현은 결국 소리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In the end, Jihyeon broke down without a sound.

-아/어 내다to see something through to the end; to manage to endure or accomplish it

그 논이 하룻밤 폭풍쯤은 거뜬히 참아 냈다.

That paddy bore a single night's storm with ease.

-다 보니as one kept doing something, one came to notice or realize a result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무엇을 향해 달렸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Running with her eyes only ahead, she had forgotten even what she was running toward.

-다 보면if one keeps doing something, then in time a result follows

그저 기다리다 보면 때맞춰 알아서 익는다.

You just keep waiting, and in its own time it ripens on its own.

Take the final quiz

3 questions on the who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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