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만한 형용사

믿을 만한 형용사 An Adjective You Can Trust

Part 1

골목이 끝나는 자리에, 모양의 낡은 가게 하나가 섬처럼 남아 있었다.

주변 집들은 하나둘 팔려 나가 텅 비었지만, 오 선생은 그 가게를 뒤로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평생 초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정년을 맞은 해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녀가 지키던 작은 가게를 홀로 이어받았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칠 때면, 그는 함부로 믿지 말라고 가르치곤 했다.

명사와 동사는 좀처럼 거짓말을 못 하지만, 얼마든지 사람을 홀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오랜 .

은퇴한 노인에게 남은 즐거움이라고는 토요일마다 사는 한 장이 거의 전부였다.

옆 골목의 최 할머니와 그는 오래전부터 그 두고 사소한 이어 왔다.

둘 중 누구의 번호가 하나라도 더 맞느냐, 그것이 두 노인의 유일한 승부였다.

최 할머니의 손녀 은지는 학교가 끝나면 늘 가게에 들러 부리며 사탕을 졸랐다.

그러나 그 조용한 나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모양이었다.

골목 전체를 밀어 버리려는 개발 회사가, 이제 오 선생의 서명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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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어느 늦은 오후, 값비싼 정장을 걸친 사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개발 회사의 실장이라며, 오 선생에게 정중한 태도로 명함을 내밀었다.

사내가 펼쳐 보인 안내서에는 '쾌적한', '고급스러운', ' 그대로의' 같은 잔뜩 박혀 있었다.

오 선생은 그 매끄러운 어쩐지 느껴졌다.

이윽고 사내는 목소리를 낮추고, 두툼한 봉투 하나를 탁자 위로 슬며시 밀어 놓았다.

봉투 안에 든 것은 서명에 대한 대가, 곧 사기 위한 .

액수를 확인한 순간, 오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잠시 놓고 말았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 가던 그에게, 그 돈은 노년을 단숨에 지워 줄 만큼 큰 액수였다.

이대로 마음이 흔들리다가는, 그 자리에서 펜을 잡아 버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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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그러나 막상 펜을 손에 쥐고 보니, 안내서를 가득 채운 화려한 하나같이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그 숱한 어디에도 ''는 말 한마디만은 들어 있지 않았다.

생전의 아내가 이 비좁고 낡은 가게를 늘 ' 곳'이라 부르던 기억이 그제야 되살아났다.

그 한마디를 떠올리고서야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은 그는, 봉투를 조용히 밀어 돌려주며 끝내 그 달콤한 유혹을 참아 냈다.

사내는 낯빛을 싹 바꾸더니, 이런 가게를 붙들어 무엇에 쓰겠느냐고 비웃었다.

그러나 오 선생에게 그곳은, 돈으로는 결코 잴 수 없는 방식으로 여전히 자리였다.

정작 그를 아프게 한 것은 사내의 조롱이 아니라, 이미 도장을 찍고 떠난 이웃들이 그의 고집 탓에 보상이 늦어진다며 도리어 그를 사실이었다.

그 많던 이웃 가운데 오직 최 할머니만이 끝까지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주었다.

텅 빈 골목에는 개발 회사가 내건 울긋불긋한 바람에 무심히 나부끼고 있었다.

이렇게 홀로 버티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주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는 씁쓸히 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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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그 뒤로 개발 계획은 마지막 얻지 못해 기약 없이 미뤄졌고, 사내도 두 번 다시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 선생은 자신의 선택이 과연 현명했는지 쉽사리 확신할 수 없었다.

토요일이 돌아오자, 그는 여느 때처럼 한 장을 사서 최 할머니와 번호를 맞춰 보았다.

이번에도 두 사람의 번호는 어김없이 빗나갔고, 최 할머니는 "그럼 이번 주 없는 셈이네" 하며 껄껄 웃었다.

돈으로 치면 오 선생은 이 골목에서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달려온 은지가 그를 꼭 "할아버지가 우리 골목의 진짜 !" 하고 외쳤을 때, 그는 문득 다른 셈법을 떠올렸다.

아이의 말이 옳다면, 세상에는 돈으로는 매길 수 없는 승부가 분명히 있는 셈이었다.

낡은 가게 안에는 아내가 남긴 말 한마디가 여전히 옅은 온기처럼 배어 있었다.

오 선생이 평생 믿어 온 단 하나의 , ''는 이제 그 가게만이 아니라 그의 남은 나날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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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는 모양이다it seems / appears that (an inference drawn from what one observes)

그 조용한 나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모양이었다.

Those quiet days, it seemed, were not going to last much longer.

-다가는if one keeps doing this (a bad result will follow)

이대로 마음이 흔들리다가는, 그 자리에서 펜을 잡아 버릴 것만 같았다.

If he let his heart keep wavering like this, he felt he might just seize the pen then and there.

-고 보니having actually done something, one realizes / finds that...

막상 펜을 손에 쥐고 보니, 화려한 형용사들이 하나같이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Once he actually took the pen in hand, the showy adjectives struck him, every one, as hollow.

-아/어 내다to manage to do something, to see it through to the end

그는 끝내 그 달콤한 유혹을 참아 냈다.

In the end he managed to resist that sweet temptation.

-다 보면if one keeps doing something, then (eventually)...

이렇게 홀로 버티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주는 날이 올까.

If he kept holding out alone like this, would a day come when people under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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