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다정한 악역
The Gentlest Villain
무대에 조명이 깔리자, 객석을 가득 메운 은 하나같이 숨을 죽였다.
그 서늘한 빛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노인이, 사십 년째 무대에서 맡아 온 강 선생이었다.
이번 연극에서 그가 맡은 인물은, 어린아이를 이었다.
무대 위의 강 선생은 언제나 남을 해치는 쪽, 곧 였다.
저런 을 타고난 배우는 평생 저런 역만 맡을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은 그를 두고 쉽게 말하곤 했다.
들은 그를 미워하면서도, 그가 등장하는 순간만큼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린아이를 끌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장면에서는, 몇몇 이 자기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늙은 몸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았는지, 젊은 시절의 이 아직 그 안에서 뜨겁게 타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를 내려온 강 선생은, 방금 전의 그 무서운 남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1
극단의 막내인 민호에게, 무대 밖의 강 선생은 스승이자 나 다름없었다.
이번 연극에서 민호는 의 역을 맡은, 대사 몇 줄이 전부인 신인이었다.
극 중에서 강 선생은 그 를 사정없이 , 발로 밀치는 까지 했다.
반면에 무대 뒤의 강 선생은, 단 한 번도 민호에게 모진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추운 극장에서 민호가 감기라도 들까 봐, 여벌 을 챙겨 슬며시 손에 쥐여 주는 사람이었다.
그 낡은 을 받아 들 때마다, 민호는 어쩐지 이 뜨거워지곤 했다.
민호는 강 선생의 이름이 실린 연극 잡지라면 무엇이든 빠짐없이 모았다.
스승의 빛바랜 인터뷰를 읽다 보면, 화려한 주역 하나 없이 걸어온 그 길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세상은 평생 미움받는 역할만 해 온 늙은 배우에게 좀처럼 상을 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강 선생은 서운한 기색 한 번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그해 봄, 연극계의 큰 에서 강 선생이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에 올랐다.
극단 사람들은 제 일처럼 기뻐했지만, 함께 에 오른 이들의 면면을 보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나란히 이름을 올린 젊은 배우들의 가, 그만큼 무서웠던 것이다.
장 로비를 가득 메운 도, 대개는 그 젊은 스타들의 이름만 입에 올리고 있었다.
객석 한구석에서 민호는 홀로 마음을 졸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생님이 또 빈손으로 돌아가시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의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무대 위 사회자가 하얀 봉투를 뜯는 동안, 강 선생은 겉으로는 애써 모양이었다.
그러나 젊은 배우들의 드센 에 않으려 을 쓰는 그의 두 손은, 무릎 위에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사회자가 수상자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극장 안의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그리고 ,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진 이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강 선생의 것이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결국 사십 년 만에, 늘 미움만 받아 온 노배우의 이름이 수상자로 불린 것이다.
강 선생은 천천히 마이크 앞에 섰지만, 준비해 온 소감 대신 전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 상의 절반은, 오늘 밤 제 곁을 지켜 준 젊은 배우 민호의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호명에 민호는 이 하얗게 질려, 자리에서 얼른 일어서지도 못했다.
대사 몇 줄의 역에 지나지 않아도 민호의 연기는 늘 남달리 며, 그 숨은 재능을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평생 남을 해치는 만 연기해 온 제가, 오늘만은 한 사람의 진짜 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가슴속에 그토록 숨겨 두었던 앞에서, 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사십 년이나 뒤로 온 노배우가, 이제야 그 말을 남김없이 꺼내 놓은 셈이었다.
지나고 보니, 강 선생이 무대 밖에서 건넨 그 모든 다정함이야말로 가장 서툴고 긴 사랑의 연기였다고, 민호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막이 천천히 내려오는 동안, 두 배우는 나란히 서서 그칠 줄 모르는 박수를 받았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4
Vocabulary
Grammar notes
저런 낯을 타고난 배우는 평생 악역만 맡을 수밖에 없었다.
An actor born with a face like that had no choice but to play villains all his life.
무대에서는 부하를 구박했지만, 반면에 무대 밖에서는 오히려 그를 살뜰히 챙겼다.
On stage he mistreated his underling; offstage, by contrast, he looked after him tenderly instead.
세상은 그 늙은 배우에게 좀처럼 상을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The world, it seemed, was slow to give that old actor any prize.
이대로 가다가는 선생님이 또 빈손으로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If it kept on like this, it seemed Teacher was bound to go home empty-handed again.
지나고 보니, 그 무뚝뚝한 다정함이야말로 가장 긴 사랑의 연기였다.
Looking back, that gruff tenderness was, of everything, the longest performance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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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questions on the who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