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팔지 않는 것

노인이 팔지 않는 것 What the Old Man Won't Sell

Part 1

의 남쪽 끝, 바닷바람이 골목까지 파고드는 항구 마을에 오래된 가게가 하나 있었다.

주인은 다리를 앉아 하루 종일 바깥을 내다보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유리장마다 낡은 물건을 정성스레 두었고, 그 하나하나를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다루었다.

벽 한 면은 키 큰 가 통째로 있었고, 그 규칙적인 소리가 가게의 맥박처럼 울렸다.

먼지 앉은 라디오에서는 늘 구성진 한 이 흘러나왔다.

낡은 나무와 쇠붙이의 냄새, 그러니까 오래 묵은 시간의 냄새가 실내에 나직이 .

그러나 이 가게가 벌어들이는 은 거의 없었다.

손님들은 대개 물건만 흘깃 보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

그래도 노인은 손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빈 가게를 지키는 그 고요함을 즐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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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어느 겨울 오후, 지현이라는 젊은 여자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녀는 얼마 전 국문학으로 박사 를 받았지만, 학위가 곧 밥이 되어 주지는 않았다.

반년째 만 쓰다가 지친 그녀는, 딱히 살 것도 없이 그저 찬 바람을 피해 아무 가게에나 들어온 참이었다.

유리장 안쪽, 녹슨 한 자루가 유독 그녀의 눈길을 붙들었다.

"그거요? 옛날에 진짜 이 쓰던 물건이에요." 노인이 말했다.

명색이 연구자인 지현은 그 말이 그만 웃고 말았다.

이라니, 기껏해야 오래된 영화에 쓰인 일 텐데 싶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발걸음은 자꾸만 그 앞으로 되돌아와 .

노인은 그런 그녀를 흘깃 보더니, 물건마다 그럴싸한 을 하나씩 지어 붙이는 모양이었다.

그 어수룩한 에, 지현도 슬그머니 경계를 풀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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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노인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 보니, 지현은 어느새 낡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그 사이 라디오에서 한 이 새로 흘러나왔다.

"이 대목, 심청가의 '범피중류'네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녀를 노인이 처음으로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구석진 가게에서 그 노래를 알아듣는 손님은 그녀가 처음이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친밀감이 시작했다.

노인은 젊은 시절 형과 함께 을 따라다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은 소리를 유난히 좋아했지만, 그 소란한 시절에 으로 몰려 어디론가 끌려간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노인은 그 이야기를 아니라는 투로 흘려 말했지만, 낮아진 목소리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제야 지현은 노인이 왜 물건마다 이야기를 지어 붙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야기로 되풀이되는 동안은, 사라진 사람도 그의 안에서 여전히 .

도, 형도, 저 녹슨 도, 노인에게는 팔아 치울 물건이 아니라 지켜야 할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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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어느새 구석의 무쇠 난로는 가 다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노인은 선반에서 을 집어 굵은 초에 불을 붙였다.

온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빈 가게에도 하나쯤은 켜 두어야 한다는 오랜 고집에서였다.

반면에 지현은, 이런 온기라면 가 없어도 얼마든지 더 앉아 있을 만하다고 느꼈다.

자리를 뜨려는 그녀에게 노인이 그 녹슨 을 불쑥 내밀었다.

" 이야기, 이제 학생이 이어서 지어 봐요. 그래야 이 물건도 안 죽지."

아닌 쇳덩이 하나가, 그 순간 그녀의 손안에서 묵직한 처럼 느껴졌다.

지현은 여느 손님들처럼 말없이 대신, 노인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죽은 것을 다시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일 —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학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현은 결국 그렇게 믿기로 했다.

등 뒤에서는 라디오의 가락이 낮게 그녀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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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다 보니as one keeps doing X, one comes to (realize / end up in a state)

노인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 보니, 지현은 어느새 낡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As she kept trading remarks with the old man, Jihyeon found she had settled onto a worn chair before she knew it.

-(으)ㄴ/는 모양이다it appears / seems that (an inference drawn from what one observes)

노인은 물건마다 그럴싸한 사연을 하나씩 지어 붙이는 모양이었다.

The old man seemed to be the sort who pinned a plausible story onto each object.

-(으)ㄹ 수밖에 없다to have no choice but to; to inevitably end up doing

그 어수룩한 능청에, 지현도 경계를 풀 수밖에 없었다.

At that guileless playacting, Jihyeon too could not help lowering her guard.

-아/어 내다to manage to do; to bring about, carry through to the end

죽은 것을 다시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일.

the work of remaking what is dead into something living again.

게다가/오히려/반면에/결국discourse connectors: moreover / rather / on the other hand / in the end

반면에 지현은, 이런 온기라면 연료가 없어도 더 앉아 있을 만하다고 느꼈다.

Jihyeon, on the other hand, felt she could sit a while longer even without any f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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