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은 국경을 모른다

기린은 국경을 모른다 The Giraffe Knows No Borders

Part 1

사람들은 별빛 동물원의 늙은 를 노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짐승의 마음을 그만큼 오래, 그만큼 깊이 들여다본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동물원은 어느새 전국에 이름난 가 되어 있었다.

그 동물원의 는 목이 긴 한 마리였다.

에게는 마음껏 거닐 넓은 가 필요했다.

는 그 너른 우리를 늘 정갈하게 손질해 두었고, 새벽마다 손수 을 날랐다.

하얀 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그는 본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동물원에는 젊은 여자가 자주 드나들었다.

소문난 , 그녀가 정작 마음을 준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그 기린이었다.

그녀는 사재를 털어 동물원을 도왔고, 겨울이 오기 전 우리 곳곳에 새 카메라를 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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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이 가까운 그곳의 겨울은 유난히 일찍, 유난히 매섭게 들이닥쳤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어느 밤, 검은 외투를 걸친 사내가 를 넘었다.

그는 새로 달린 카메라를 힐끔거리며 기린 우리 쪽으로 몸을 낮추었다.

그러나 얼어붙은 안에서 걸려 버렸고, 사내는 좁고 캄캄한 우리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몇 시간을 떨던 그는, 누군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것이다.

새벽 순찰을 돌던 가 우리 안의 을 알아챈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노인은 놀라 소리치는 대신, 잠긴 문을 열고 떨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제 를 벗어 사내의 어깨에 덮어 주고, 언 손을 제 품에 넣어 녹였다.

떨고 있는 사내를 못 본 척하기란 노인에게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노인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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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이튿날 아침, 동물원은 관람을 잠정 .

안전이 확인되기 전에는 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이, 원장의 짧은 설명이었다.

사내가 그토록 없애고 싶어 하던 카메라는, 이미 그의 얼굴을 또렷이 붙들어 두고 있었다.

경찰은 곧 그를 유력한 로 붙잡았다.

그런데 조사가 깊어질수록, 사건은 처음의 짐작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빚에 오래 시달리던 사내는, 자신을 낯선 자의 요구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그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기린을 너머로 자들이, 카메라를 못 쓰게 만들 사람으로 그를 골랐던 것이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었고, 사내는 그들의 손에 놀아난 말에 지나지 않았다.

"제 꼴이 참 ." 조사실에서 사내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부린 자들은 이미 국경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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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사건이 마무리되자, 경찰과 는 노인의 공을 치하하려 했다.

그 여자는 값비싼 을 노인의 손에 억지로 쥐여 주려 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것을 정중히 되돌려주었고, 여러 번 권해도 결국 어떤 상도 .

노인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잠시 보았다.

젊은 날의 그 역시 막다른 골목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한 적이 있었음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상 대신, 그 사내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기를 청했다.

" 저 사람을 벌로만 끝내지 말아 주십시오."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한마디 뒤로 그는 더 말이 없었고, 침묵으로써 자신의 뜻을 온전히 대신했다.

그 깊은 침묵 앞에서, 여자도 사내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며칠 뒤 별빛 동물원은 다시 문을 열었고, 은 여느 때처럼 긴 목을 너머로 뻗었다.

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누가 죄인이고 누가 아닌지, 그 짐승은 알지도, 알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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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ㅁ (abstract nominalizer)turns a whole clause into an abstract noun (the fact/that…), here as the object of 'had not forgotten'.

젊은 날의 그 역시 어리석은 선택을 한 적이 있었음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He had not forgotten that he, too, in his youth, had once made a foolish choice.

-기 (nominalizer as subject/object)nominalizes an action to serve as subject or object; 척하기란 = 'to pretend' as the topic of the sentence.

떨고 있는 사내를 못 본 척하기란 노인에게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To pretend not to see a shivering man was, for the old man, impossible from the very first.

-(으)로써 (by means of)formal 'by means of / with' — the instrument by which something is done; here, silence as his means.

그는 침묵으로써 자신의 뜻을 온전히 대신했다.

He let silence itself stand, whole and entire, for what he meant.

-(으)ㄹ 수밖에 없다 (no choice but to)expresses being left with only one option — 'have no choice but to.'

사내는 낯선 자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Unable to shake off the stranger's demands, the man had no choice but to take the job.

게다가/오히려/반면에/결국 (discourse connectors)discourse markers steering the narration — 오히려 'if anything, on the contrary'; 결국 'in the end.'

오히려 그를 부린 자들은 이미 국경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If anything, the ones who had used him had already vanished somewhere beyond the border.

-고 말다 (end up doing)an action reaching an unwanted or final result — 'end up (regrettably) doing.'

사내는 좁고 캄캄한 우리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

The man ended up trapped in the cramped, pitch-black 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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