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의 약
A Cure for Every Illness
십 년째 이 시골 를 지켜 온 나에게도, 박 노인만큼 다루기 힘든 환자는 없었다.
그는 아침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찾아와, 세상의 온갖 병을 제 몸 하나에 다 짊어진 사람처럼 소리를 늘어놓았다.
" 양반, 나는 아주 을 있다니까." 그것이 십 년째 한결같은 그의 아침 인사였다.
산더미 같은 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바늘 끝만 한 통증에도 온 얼굴을 찡그리며 을 부렸다.
정작 그의 몸을 갉아먹는 진짜 병은, 오래 방치된 같은 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그의 혈압을 재고, 그를 여느 환자와 다름없이 정성껏 .
밤잠을 설쳤는지 그의 두 눈은 늘 벌겋게 있었고, 눈꺼풀은 금방이라도 스르르 듯 무거워 보였다.
그가 늘어놓는 은 어느새 나에게 작지 않은 였지만, 나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약봉지 대신, 규칙적이고 생활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보다 낫다는 말을 처방처럼 건넸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1
하지만 박 노인은 병원에서 지어 주는 약을 도무지 미덥지 않아 했다.
"이런 건 다 소용없어. 한 재만 잘 지어 먹으면 이 씻은 듯 낫는 법이야." 그는 늘 같은 소리를 되풀이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열 번도 넘게 들은 그 이야기가 나는 이제 지겹도록 .
그런 어느 봄날, 그는 처음으로 혼자가 아니라 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제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그 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마가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열이 난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고, 알맞은 를 골라 먹였다.
약 기운이 퍼지자 아이의 눈은 이내 스르르 , 박 노인은 그 잠든 얼굴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그의 커다란 손이, 그날따라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제야 그가 매일같이 를 찾는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2
그날 오후, 앞 좁은 길에서 요란한 접촉 사고가 났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골목을 돌아 나오던 승용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은 것이다.
마침 창가에 서 있던 나는, 그 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유일한 였다.
트럭 운전자는 대뜸 상대를 손가락질하며 기어이 를 하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억울함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승용차 운전자는, 으로 내 소매를 붙들고 증언을 애원했다.
나는 두 사람을 우선 안으로 들이고, 실랑이 대신 따뜻한 차부터 내어 정성껏 .
낯선 이에게도 선뜻 손을 내미는 이런 가, 이 작은 마을이 여태 지켜 온 인심이었다.
김이 오르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 두 사람의 곤두섰던 언성도 차차 누그러졌다.
알고 보니 크게 다칠 일도, 까지 갈 일도 아니었다며 그들은 멋쩍게 서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소란의 한복판에서도, 박 노인은 제 를 등 뒤로 감싼 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3
소란이 가라앉고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 뒤에도, 박 노인은 웬일인지 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텅 빈 대기 의자에 홀로 앉아, 예전 같지 않은 제 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젊을 적에는 씨름판을 휩쓸 만큼 이었고, 힘이라면 온 동네에 당할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그의 팔을 걷어 다시 혈압을 재며,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수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외로운 세월이 몸에 새긴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할아버지, 좋다는 이나 을 다 드셔도, 곁에 사람이 없으면 그 병은 낫지 않아요."
그는 여느 때처럼 손을 내저으며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 순간, 벌겋게 그의 두 눈 깊은 곳에서 나는 짙은 외로움을 보았다.
십 년 동안 나를 아프게 하던 그의 이, 실은 살려 달라는 외마디 신호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반복되던 그의 방문이 내게는 조금도 않았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4
이듬해 봄, 나는 마을 노인들을 위해 한편에 자그마한 건강 모임을 열었다.
혈압을 함께 재고, 간단한 상식을 나누며, 무엇보다 웃음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나는 찾아오는 노인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귀한 손님처럼 정성껏 .
박 노인은 그 모임의 첫날, 의 손을 제 커다란 으로 꼭 감싸 쥐고 나타났다.
성긴 머리카락을 물기로 단정히 빗어 넘긴 그의 이, 그날따라 제법 말끔했다.
그날 그는 태어나 처음인 듯, 대신 환한 웃음을 온 얼굴 가득 지어 보였다.
실컷 웃고 뛰놀다 지친 의 두 눈이,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스르르 .
나는 그 평화로운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또 한 명의 였다.
어쩌면 을 다스리는 약은 값비싼 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온기인지도 몰랐다.
약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도 도 그 지독한 외로움 앞에서는 한낱 작은 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밤늦도록, 의 불빛은 그 어떤 보다 따뜻하게 마을을 밝히고 있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박 노인은 제 손녀를 등 뒤로 감싼 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Mr. Park stayed to the very end, his granddaughter shielded behind his back.
만병을 다스리는 약은 값비싼 한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온기인지도 몰랐다.
The medicine that masters every illness might well be not costly herbal remedy but the warmth that passes between people.
제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그 헤어스타일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That hairstyle, the very image of her grandfather's, was so endearing that I laughed in spite of myself.
약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If only it were an illness that medicine could cure.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승용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은 것이다.
The truth was, a truck loaded with cargo had rammed the side of the sedan.
Take the final quiz
5 questions on the who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