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밖에 모르던 사내

소밖에 모르던 사내 The Man Who Only Knew Cattle

Part 1

사람보다 소를 먼저 챙긴다는 말은, 우리 집안에서 흉이 아니라 오래된 사실에 가까웠다.

강원도 산자락에 엎드린 우리 늘 두엄 냄새와 짐승의 온기로 축축했고, 그 축축함 속에서 삼 형제가 부대끼며 자랐다.

맏이인 큰형은 그중에서도 유별난 , 잔칫날 사람들 틈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짚더미에 파묻혀 있기를 즐겼다.

늙은 소가 밤새 새끼를 낳느라 울던 날, 형은 뜬눈으로 그 곁을 지키며 짐승의 등을 제 식구인 양 쓸어내렸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람 앞에서는 말문부터 막히거니와, 눈길 둘 데를 몰라 애먼 땅만 내려다보곤 하는 영락없는 곰 같은 사내였다.

젊은 날 한 번 장가를 들었으나, 말보다 소를 앞세우는 그 무뚝뚝함을 견디지 못한 몇 해 못 가 조용히 짐을 쌌다.

그 뒤로 형은 한참을 홀로 지내다 저처럼 말수 적고 짐승을 어여삐 여기는 새로 맞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었다.

둘째인 나에게 늘 한 뼘쯤 먼,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소의 해산은 밤새 지키면서 정작 제 인생의 빈자리는 돌보지 못하는 형을 보며, 나는 저 사람이 평생 사람 정만은 모르고 늙겠거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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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내가 한 아이의 아비가 되었다.

되어 첫아이를 품에 안던 날, 어머니는 커다란 잉어가 치맛자락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그렇게 얻은 우리 온 집안의 늦은 경사였다.

밤낮이 뒤바뀐 나는 눈 밑이 까맣게 죽어 가면서도, 아이가 처음 웃던 순간만은 서로 놓칠세라 지켜보았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첫 생일, 곧 맞던 날에는 멀리 흩어져 살던 좁은 마당에 그득 모여들었다.

어머니의 여동생과 함께 온 나를 볼 때마다 등을 툭 치며 "어이, 김 !"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동생인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어깨에 지고 헐레벌떡 들어섰다.

막내 상 위에 실타래와 붓과 돈을 나란히 올려놓으며 조카가 무엇을 집을지 궁금해 안달이었다.

그 북적임 속에서 마당 구석 소 우리 곁을 떠나지 못했고, "매형은 소가 사람보다 좋으신가 봐요" 하고 웃자 "허허, 저 원래 저렇지" 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남 앞에서 어수룩해 보이는 저 형이 실은 작은 일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속 깊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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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이듬해 봄, 읍내 한복판에서 길 잃은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좁은 동네에 삽시간에 퍼졌다.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그 낯선 어른들 틈에서 겁에 질려 딸꾹질하듯 울고 있었다.

버스 매표소 직원이 차표를 끊어 주려다 말고 아이의 부모부터 찾아야겠다며 나선 참이었다.

마침 소 먹일 사러 나왔던 그 자리에 있었던 탓에, 얼떨결에 사건의 나서게 되었다.

출동한 경찰이 아이의 묻자, 평소 사람 얼굴 하나 제대로 못 외우던 형이 뜻밖에도 옷차림과 흉터까지 또박또박 일러 주었다.

전한 그 세세한 덕분에, 이튿날부터 부모를 찾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날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록 아이를 찾아가는 이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과 데면데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이를 맡아 재운 것은 뜻밖에도 그 .

소의 울음은 그토록 잘 알아듣던 형이, 이번에는 말 한마디 없이 아이의 눈빛만 보고 배가 고픈지 무서운지를 척척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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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부모를 끝내 찾지 못하면 아이가 보내질 처지였고, 그 말에 어머니는 잃은 송아지를 보듬듯 아이를 끌어안았다.

임시로 아이를 맡아 기르는 몇 달 동안, 형과 서툰 손길로나마 난생처음 해 보는 온 마음을 쏟았다.

낯을 가리던 아이도 어느새 형에게만은 얼마나 굴던지, 그 무릎을 제집인 양 파고들었다.

평생 사람보다 짐승이 편하다던 그 , 자다 깬 아이의 울음소리에 맨발로 마당을 가로지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평생 사람 정을 모르고 늙으리라 여겼던 형이 실은 정을 쏟을 대상을 만나지 못했을 뿐임을 깨달았다.

찬바람이 불 무렵, 아이의 친부모를 끝내 찾지 못했다는 통보가 관청에서 날아들었다.

그날 밤 형과 늦도록 마주 앉아 무언가를 오래 상의했다.

평소 열 마디를 아끼던 형이 그날만은 나직한 목소리로 오래 말을 이었다고, 이튿날 붉어진 눈으로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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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부부는 마침내 그 아이를 정식으로 딸로 마음을 굳혔다.

아이를 올리고 입양 절차를 마치던 날,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형이 남몰래 훔치는 것을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소 한 마리 없이는 못 살던 사내에게, 이제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생긴 것이다.

"소 돌보듯 돌보면 되지요, 뭐." 형이 뒤통수를 긁으며 던진 그 한마디에, 온 식구가 눈물 반 웃음 반으로 무너졌다.

말마따나 소한테나 다정한 형이, 그 무뚝뚝한 방식 그대로 한 아이의 온 세상이 되어 있었다.

이듬해 봄, 아이가 처음으로 형을 "아빠"라 부르던 날, 소마저 길게 울어 화답하는 듯했다.

내 형의 새 딸은 곧 손을 맞잡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단짝이 되었다.

짐승 냄새만 배어 있던 그 오래된 , 그해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짐승 울음보다 크게 울렸다.

사람보다 소를 먼저 챙기던 나의 , 그렇게 뒤늦게,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한 사람의 아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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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거니와not only ...; and besides, moreover (a reinforcing second clause)

사람 앞에서는 말문부터 막히거니와, 눈길 둘 데를 몰라 애먼 땅만 내려다보곤 했다.

Before people his words would fail him from the start, and besides, not knowing where to look, he'd stare at the blameless ground.

-(으)ㅁ에도 불구하고despite, in spite of the fact that

사람과 데면데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맡아 재운 것은 뜻밖에도 그 큰형이었다.

Despite his standoffishness with people, the one who took the child in was, of all people, that big brother.

얼마나 -던지how ... it was; so ... that (recalling an extent)

아이도 어느새 형에게만은 얼마나 친근하게 굴던지, 그 무릎을 제집인 양 파고들었다.

The child came to behave so warmly toward my brother alone that she'd burrow into his lap as if it were home.

-느니 (차라리)rather than do X, one would sooner do Y

잔칫날 사람들 틈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외양간 짚더미에 파묻혀 있기를 즐겼다.

Rather than sit among people on a feast day, he'd sooner burrow into the straw of the cowshed.

-(으)ㄹ세라for fear that; lest something should happen

아이가 처음 웃던 순간만은 서로 놓칠세라 지켜보았다.

They watched over the moment the child first smiled, each afraid to miss it.

-(으)ㄴ 것이다a retrospective reveal — 'the fact was that…'

이제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처자가 생긴 것이다.

The fact was, he now had a wife and child to guard with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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