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밖에 모르던 사내
The Man Who Only Knew Cattle
사람보다 소를 먼저 챙긴다는 말은, 우리 집안에서 흉이 아니라 오래된 사실에 가까웠다.
강원도 산자락에 엎드린 우리 늘 두엄 냄새와 짐승의 온기로 축축했고, 그 축축함 속에서 삼 형제가 부대끼며 자랐다.
맏이인 큰형은 그중에서도 유별난 , 잔칫날 사람들 틈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짚더미에 파묻혀 있기를 즐겼다.
늙은 소가 밤새 새끼를 낳느라 울던 날, 형은 뜬눈으로 그 곁을 지키며 짐승의 등을 제 식구인 양 쓸어내렸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람 앞에서는 말문부터 막히거니와, 눈길 둘 데를 몰라 애먼 땅만 내려다보곤 하는 영락없는 곰 같은 사내였다.
젊은 날 한 번 장가를 들었으나, 말보다 소를 앞세우는 그 무뚝뚝함을 견디지 못한 몇 해 못 가 조용히 짐을 쌌다.
그 뒤로 형은 한참을 홀로 지내다 저처럼 말수 적고 짐승을 어여삐 여기는 새로 맞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었다.
둘째인 나에게 늘 한 뼘쯤 먼,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소의 해산은 밤새 지키면서 정작 제 인생의 빈자리는 돌보지 못하는 형을 보며, 나는 저 사람이 평생 사람 정만은 모르고 늙겠거니 여겼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1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내가 한 아이의 아비가 되었다.
되어 첫아이를 품에 안던 날, 어머니는 커다란 잉어가 치맛자락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그렇게 얻은 우리 온 집안의 늦은 경사였다.
밤낮이 뒤바뀐 나는 눈 밑이 까맣게 죽어 가면서도, 아이가 처음 웃던 순간만은 서로 놓칠세라 지켜보았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첫 생일, 곧 맞던 날에는 멀리 흩어져 살던 좁은 마당에 그득 모여들었다.
어머니의 여동생과 함께 온 나를 볼 때마다 등을 툭 치며 "어이, 김 !"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동생인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어깨에 지고 헐레벌떡 들어섰다.
막내 상 위에 실타래와 붓과 돈을 나란히 올려놓으며 조카가 무엇을 집을지 궁금해 안달이었다.
그 북적임 속에서 마당 구석 소 우리 곁을 떠나지 못했고, "매형은 소가 사람보다 좋으신가 봐요" 하고 웃자 "허허, 저 원래 저렇지" 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남 앞에서 어수룩해 보이는 저 형이 실은 작은 일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속 깊은 것을.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이듬해 봄, 읍내 한복판에서 길 잃은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좁은 동네에 삽시간에 퍼졌다.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그 낯선 어른들 틈에서 겁에 질려 딸꾹질하듯 울고 있었다.
버스 매표소 직원이 차표를 끊어 주려다 말고 아이의 부모부터 찾아야겠다며 나선 참이었다.
마침 소 먹일 사러 나왔던 그 자리에 있었던 탓에, 얼떨결에 사건의 나서게 되었다.
출동한 경찰이 아이의 묻자, 평소 사람 얼굴 하나 제대로 못 외우던 형이 뜻밖에도 옷차림과 흉터까지 또박또박 일러 주었다.
전한 그 세세한 덕분에, 이튿날부터 부모를 찾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날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록 아이를 찾아가는 이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과 데면데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이를 맡아 재운 것은 뜻밖에도 그 .
소의 울음은 그토록 잘 알아듣던 형이, 이번에는 말 한마디 없이 아이의 눈빛만 보고 배가 고픈지 무서운지를 척척 알아챘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부모를 끝내 찾지 못하면 아이가 보내질 처지였고, 그 말에 어머니는 잃은 송아지를 보듬듯 아이를 끌어안았다.
임시로 아이를 맡아 기르는 몇 달 동안, 형과 서툰 손길로나마 난생처음 해 보는 온 마음을 쏟았다.
낯을 가리던 아이도 어느새 형에게만은 얼마나 굴던지, 그 무릎을 제집인 양 파고들었다.
평생 사람보다 짐승이 편하다던 그 , 자다 깬 아이의 울음소리에 맨발로 마당을 가로지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평생 사람 정을 모르고 늙으리라 여겼던 형이 실은 정을 쏟을 대상을 만나지 못했을 뿐임을 깨달았다.
찬바람이 불 무렵, 아이의 친부모를 끝내 찾지 못했다는 통보가 관청에서 날아들었다.
그날 밤 형과 늦도록 마주 앉아 무언가를 오래 상의했다.
평소 열 마디를 아끼던 형이 그날만은 나직한 목소리로 오래 말을 이었다고, 이튿날 붉어진 눈으로 전해 주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4
부부는 마침내 그 아이를 정식으로 딸로 마음을 굳혔다.
아이를 올리고 입양 절차를 마치던 날,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형이 남몰래 훔치는 것을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소 한 마리 없이는 못 살던 사내에게, 이제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생긴 것이다.
"소 돌보듯 돌보면 되지요, 뭐." 형이 뒤통수를 긁으며 던진 그 한마디에, 온 식구가 눈물 반 웃음 반으로 무너졌다.
말마따나 소한테나 다정한 형이, 그 무뚝뚝한 방식 그대로 한 아이의 온 세상이 되어 있었다.
이듬해 봄, 아이가 처음으로 형을 "아빠"라 부르던 날, 소마저 길게 울어 화답하는 듯했다.
내 형의 새 딸은 곧 손을 맞잡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단짝이 되었다.
짐승 냄새만 배어 있던 그 오래된 , 그해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짐승 울음보다 크게 울렸다.
사람보다 소를 먼저 챙기던 나의 , 그렇게 뒤늦게,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한 사람의 아비가 되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사람 앞에서는 말문부터 막히거니와, 눈길 둘 데를 몰라 애먼 땅만 내려다보곤 했다.
Before people his words would fail him from the start, and besides, not knowing where to look, he'd stare at the blameless ground.
사람과 데면데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맡아 재운 것은 뜻밖에도 그 큰형이었다.
Despite his standoffishness with people, the one who took the child in was, of all people, that big brother.
아이도 어느새 형에게만은 얼마나 친근하게 굴던지, 그 무릎을 제집인 양 파고들었다.
The child came to behave so warmly toward my brother alone that she'd burrow into his lap as if it were home.
잔칫날 사람들 틈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외양간 짚더미에 파묻혀 있기를 즐겼다.
Rather than sit among people on a feast day, he'd sooner burrow into the straw of the cowshed.
아이가 처음 웃던 순간만은 서로 놓칠세라 지켜보았다.
They watched over the moment the child first smiled, each afraid to miss it.
이제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처자가 생긴 것이다.
The fact was, he now had a wife and child to guard with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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