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이 식어 가던 여름

TOPIK 5#7 · Food & cooking

팥이 식어 가던 여름

The Summer the Red Beans Cooled

Part 1

십오 년째 여름마다, 도현은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에 홀로 쑤어 왔다.

그러나 올여름만은, 정성껏 팥이 솥에서 그대로 식어 가도록 그의 작은 팥빙수 가게에 좀처럼 손님이 들지 않았다.

도현은 재료 하나까지 저울에 달아 보는, 손끝이 유난히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일을 두고는 , 사소한 결정 앞에서도 며칠을 망설이곤 했다.

게다가 남의 한마디에 밤잠을 설칠 만큼 성미였다.

그런 그의 가게 바로 건너에, 지난봄 화려한 카페 하나가 문을 열었다.

번쩍이는 조명과 값비싼 가구로 치장한, 누가 봐도 가게였다.

개업 주부터 카페는 도현의 오랜 하나둘 데려가 버린, 만만찮은 .

달이 지나자 그의 가게 토막이 났다.

가게에 홀로 앉아, 그는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처음으로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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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무렵 도현의 여동생 소연이 부쩍 자주 가게에 들렀다.

소연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 세상 모든 것을 문법처럼 뜯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구석 자리에서 학생들의 작문을 채점하다가, 그녀는 곧잘 혼잣말을 흘렸다.

"이 아이는 잔뜩 쌓아 놓아서, 문장이 벽돌담처럼 딱딱해."

"여기 어울리는 하나만 놓였어도 문장에 숨통이 트였을 텐데."

발음이 서툰 학생이 하나를 흘려 전혀 다른 뜻이 되어 버리는 일도, 그녀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말이란 것이어서, 하나에도 뜻이 통째로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이름난 맛집 블로그에 도현의 가게를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사실을 교묘하게 , 그의 팥빙수가 값싼 재료로 대충 만든 것인 꾸며 놓았다.

그러나 글을 이의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게에 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에 기대어 품기 시작했다.

"겉모습이 저렇게 수수하니 맛도 뻔하겠지" 하는, 대한 얄팍한 슬그머니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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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마음이 상한 도현은 며칠째 끼니를 가게 안에만 .

홧김에 그는 아예 가게를 크게 넓혀 버리자는 휩싸였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단숨에 싶은 마음과, 그러다 모든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밤마다 그의 안에서 부딪쳤다.

보다 못한 소연이 오빠를 억지로 동네 끌고 갔다.

뜨거운 방바닥에 몸을 지지고 나오자, 팽팽히 곤두서 있던 신경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사람은 한구석에 나란히 앉아, 삶은 숟갈씩 나눴다.

며칠을 굶다시피 오빠가 술에 슬며시 웃는 보고서야, 소연은 마음을 놓았다.

그날 가게로 돌아온 도현에게, 어린 남매가 우르르 뛰어들었다.

아이들은 좁은 가게 안을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한참을 .

그러다 막내가 그만, 조용한 가게가 쩌렁 울리도록 커다란 뀌고 말았다.

잠깐의 정적 끝에 아이도 어른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얼굴이 새빨개진 막내가 어쩔 몰라 도현은 " 잦으면 건강하다는 뜻이란다" 하며 짐짓 아이를 .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고 나니, 입안에 남은 단맛이 유난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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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무렵 가게에는, 창가 자리를 지키는 백발의 노신사가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커다란 위에서 보낸, 퇴역한 .

도현의 딱한 사정을 얼마쯤 눈치챘는지, 노인은 팥빙수를 뜨다 말고 넌지시 입을 열었다.

"거센 풍랑에 아무리 흔들려도, 겁이 나서 키를 급히 꺾으면 배는 그대로 뒤집히는 법일세."

"당장의 경쟁에서 뱃길이 아주 끊기는 것은 아니거든."

말이, 성급한 기울던 도현의 마음을 가만히 붙잡았다.

도현은 무리한 꿈을 접고, 손님 사람의 취향까지 살피던 팥빙수의 본래 맛에 다시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낮건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이상 초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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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뒤, 악의적인 블로그 글의 뜻밖의 방식으로 밝혀졌다.

글쓴이는 다름 아닌, 건너 화려한 카페의 주인이었다.

그는 가게 끌어올리려고, 남의 가게를 깎아내리는 글을 몰래 지어 올렸던 것이다.

진실이 알려지자, 도현을 향하던 사람들의 도리어 미안함으로 뒤바뀌었다.

알고 보니 주인은 인테리어와 번드르르한 뒤에 감당 빚을 숨기고 있었다.

결국 무리하게 카페가 먼저 문을 닫고, 조용히 .

도현은 이겼다는 기쁨보다, 끝내 조급한 휘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소연은 오빠의 가게를 두고, 꾸밈없는 하나 같다고 했다.

"겉멋만 잔뜩 부린 치장한 문장보다, 담백한 하나가 오래 법이야."

그날 저녁, 남매는 마주 앉아 지은 팥빙수를 나눠 먹으며, 보기 만큼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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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들even if … (it would hardly matter); a rhetorical concession

당장의 경쟁에서 한 번 패배한들 뱃길이 아주 끊기는 것은 아니거든.

Even if you lose once in the contest of the moment, the sea road isn't cut off for good.

-건만and yet, although (literary contrast between clauses)

매출은 여전히 낮건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더 이상 초조하지 않았다.

Sales were still thin, and yet, strangely, his heart at least was no longer on edge.

-(으)ㅁ에도 불구하고despite, in spite of the fact that

사람들은 그 가게에 가 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글 하나에 기대어 선입견을 품기 시작했다.

Despite never once having set foot in the shop, people began, on the strength of one post, to harbor a prejudice against it.

-(으)ㄴ/는 양as if, as though (feigning or seeming to be so)

그의 팥빙수가 값싼 재료로 대충 만든 것인 양 꾸며 놓았다.

He dressed it up as though his patbingsu were slapped together from cheap ingredients.

-고 말다to end up doing (often something unintended or regrettable)

막내가 그만 커다란 방귀를 뀌고 말았다.

The youngest, of all things, ended up letting out an enormous fart.

-던 것이다the fact was that…; a retrospective reveal of what had been going on

그는 남의 가게를 깎아내리는 글을 몰래 지어 올렸던 것이다.

The truth was, he had secretly written and posted the piece running down another's 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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