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없는 하루

TOPIK 5#8 · Time & routine

기한 없는 하루

A Day Without a Deadline

Part 1

지원에게는 언제부턴가 세상 모든 일에 매기는 버릇이 생겼다.

딸의 방학이 며칠 남았는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밤이 남았는지, 그녀는 무엇이든 날짜로 두곤 했다.

그녀는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의 디자이너였고, 요즘은 가장 프로젝트의 놓여 있었다.

고객사와 약속한 정확히 뒤였다.

하루의 허락되지 않는 앞에서, 시간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단위로 재깍재깍 줄어들었다.

화면 앞에 수십 장의 매만지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밝아 오곤 했다.

허기가 지면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웠고, 그렇게 때운 몸이 성할 없었다.

피로는 짙어졌고, 거울 그늘도 그만큼 깊어졌다.

해야 일은 줄기는커녕 불어나기만 하는 듯했다.

그래도 무사히 넘기면 한숨 돌릴 있으리라고,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1

Part 2

그러나 그녀를 짓누르는 것은 회사 일만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주에, 하늘이의 가을 잡혀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회사를 하루 비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지원은 한참을 망설이다 큰맘 먹고 하루 내기로 했다.

그녀는 붙들리느라 딸의 행사에 빠져 터였다.

학예회도, 상담일도, 심지어 생일조차도 늦거나 아예 얼굴을 비치지 못했다.

딸은 그런 엄마를 원망하기는커녕 언제부턴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얼굴이 되었는데, 지원에게는 어떤 꾸지람보다 아팠다.

이번만큼은 지각한 엄마가 아니라, 관중석을 지키는 엄마이고 싶었다.

그날 아침 아이 곁에 앉아서도 자꾸만 시계를 훔쳐보던 그녀였지만, 딸이 결승선을 향해 내달리는 짧은 순간만큼은 머릿속의 문득 멈추었다.

늦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스스로가 조금은 느껴졌다.

?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2

Part 3

소동이 가라앉기도 전에, 미뤄 없는 하나의 날이 성큼 다가왔다.

다음 초,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형제들은 어느 날에 지낼지, 두고 좀처럼 뜻을 모으지 못했다.

큰오빠는 당일을 고집했고, 작은오빠는 다들 모이기 편한 주말로 옮기자며 맞섰다.

정작 누구도 선뜻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 집안의 오래된 사정이었다.

지원은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쪼개어, 흩어진 형제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

그렇게 잠시 때면, 그녀의 생각은 어김없이 아버지에게로 흘러가곤 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바쁜 핑계일 뿐, 마음이 있으면 사람은 어떻게든 시간을 낸다"고 하시던 분이었다.

말이 옳다는 알면서도, 정작 아버지가 편찮으실 그녀는 방문을 다음으로 미루기만 했다.

그토록 철저히 지켜 그녀가, 아버지에게 내어 끝내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3

Part 4

일과 집안일이 한꺼번에 몰아치자, 손볼수록 오히려 뒤엉키는 프로젝트 앞에서 지원은 이내 골목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커피와 버텨 몸은 축났고, 벌써 제대로 휴식을 잊고 지낸 셈이었다.

지난 동안 그녀가 마음 놓고 소리 내어 웃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런 나날의 유일한 , 이불을 뒤집어쓴 몰래 챙겨 보던 드라마 편이었다.

그런데 하필 드라마마저 이번 주에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 회가 끝나던 밤, 그녀는 주인공과 작별하듯 이불 속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더불어 고단한 자신을 다독여 주던 작은 위안 하나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무렵, 대학원에 다니는 여동생이 뜻밖의 손을 내밀었다.

정신없지만 끝나면 조카든 집안일이든 무엇이라도 돕겠다는 것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기 짧은 방학 동안만이라도 아이를 맡아 주겠다는 말이, 지원에게는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지나고 나면 지긋지긋한 터널에도 끝이 보이리라고, 그녀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4

Part 5

마침내 당일, 지원은 완성한 자료를 마감 시각 맞추어 고객사로 넘겼으니, 꼬박 밤낮없이 매달린 끝에 얻어 결과였다.

정해진 시간이나 앞두고 마지막 파일을 전송하자, 그녀는 길게 참아 숨을 그제야 토해 냈다.

내내 팽팽히 당겨져 있던 긴장이 풀리는 순간, 온몸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며칠 아버지의 , 형제들이 오랜만에 마음을 모은 덕분에 조용하고 무사히 지나갔다.

마치고 돌아온 밤, 지친 그녀에게 하늘이가 서툰 솜씨로 끓인 라면을 슬며시 내밀었다.

"엄마, 이제 아프지 말고, 마감 없는 날도 만들어."

서툰 한마디에, 지원은 짓눌러 무게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다음 주말,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영화 편을 예매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극장에서 홀로 맞는 영화는, 게으름을 허락받은 뜻밖의 사치처럼 달콤했다.

세상 모든 일에 매기며 살아온 그녀가, 마침내 기한 없이 흐르는 소중함을 배운 셈이었다.

?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 채(로)while remaining in a certain state; with something left as it is

그녀는 화면 앞에 붙박인 채 밤을 새웠다.

She stayed up all night, rooted in front of the screen.

-기는커녕far from doing X; let alone X — rather the opposite happens

일은 줄기는커녕 한없이 불어나기만 했다.

Far from lessening, the work only kept swelling without end.

-던 것이다the fact was that…; a retrospective, explanatory reveal of what had been going on

그녀는 아버지에게 내어 줄 반나절조차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The truth was, she had never even managed to spare half a day for her father.

-(으)ㄴ 셈이다it amounts to; in effect / as good as

그녀는 반년째 제대로 쉬지 못한 셈이었다.

In effect, she had gone half a year without any proper rest.

Take the final quiz

5 questions on the whole story

Read-along

Tap any sentence to hear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