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밥상

TOPIK 5#10 · Food & cooking

느린 밥상

A Slower Table

Part 1

지훈은 은행 외환 창구에서 각국의 시세를 들여다보며 년을 보낸 사람이었다.

남보다 한발 빨리 것, 그에게 삶의 의미란 오직 거기에 있었다.

가족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은 기억이 만큼, 그는 끼니를 챙기는 마는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날도 환율이 요동치던 오후 회의의 한복판이었다.

그는 갑자기 움켜쥔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는 그의 다부진 달리 몸속은 이미 오래전부터 상해 있었다고 말했다.

끝없는 그의 바닥까지 무너뜨린 탓이었다.

앞에서는 어떤 실적도 뒷자리로 물러나는 법입니다.” 의사의 말은 조용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링거를 맞으며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는, 문득 자신이 대체 무엇을 향해 그토록 달려왔는지 되물었다.

창밖의 도시는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갔지만, 익숙하던 풍경이 이제는 남의 나라처럼 멀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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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퇴원한 지훈은 삶의 방식을 뿌리째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그는 습관처럼 들이켜던 끊었다.

기름진 외식과 고기를 줄이고, 채소와 곡물 위주의 밥상을 바꾸었다.

근육이 빠지지 않도록 콩과 두부로 넉넉히 챙겼다.

새벽마다 동네를 천천히 걷노라면 아침 공기가 유난히 .

서두를 일이 없는 하루하루 속에서 그의 마음은 조금씩 .

반년쯤 지나자 위험하다던 마침내 .

마른 나뭇가지 같던 다시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는 앞에 서서 저녁을 짓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재료를 다듬고 냄비를 젓는 동안만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숫자들이 조용히 물러났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도 나름의 있다는 것을, 그는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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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이듬해 봄, 지훈은 십여 년을 다닌 은행에 냈다.

모아 돈에 전세 빼서, 그는 낡은 골목 안에 작은 식당을 얻었다.

메뉴는 고기 없이도 풍부하도록 콩과 버섯을 중심으로 손수 짰다.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는 손끝 하나하나가 서툴고 .

접시를 나르다 국물을 쏟기도 하고, 거스름돈을 잘못 내주기도 했다.

그래도 담백하고 맛을 반가워하는 하나둘 늘어 갔다.

이윽고 그는 골목 상인들과 함께 계절마다 작은 장터를 여는 일을 되었다.

대신 손수 담근 식혜를 내놓자 동네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어느 밤, 어머니와 오래 전화를 나눈 끝에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이제야 목소리에 여유가 묻어나는구나.” 어머니의 말에 그는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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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그러나 어렵게 되찾은 평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골목 일대를 통째로 사들여 자리에 주상복합을 올리려는 계획이 소문으로 돌기 시작한 것이다.

중심에는 지훈의 상사이자 이제는 투자자로 변신한 부장이 있었다.

부장은 상인들을 하나씩 가게를 비우게 하려는 은밀히 밀어붙였다.

그러나 상인들이 지훈을 앞세워 반대 서명을 모으기 시작하자, 부장은 방향을 틀었다.

그는 문제 삼아, 근거가 희박한 지훈에게 걸어 왔다.

골목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앞에서도, 지훈은 애써 대응 서류를 준비해 나갔다.

무거운 증거 상자를 밤늦게 나르다가, 그는 모서리에 부딪혀 시퍼렇게 말았다.

오래전 쓰러졌던 바로 자리가 다시 욱신거렸지만, 이번의 통증은 이상하게도 견딜 만했다.

시작한 가게가, 어느새 골목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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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재판이 열리기가 무섭게, 부장이 내세운 문제는 허술한 밑바닥을 드러냈다.

지훈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적어 일지가, 오히려 그의 정성을 또렷이 증명해 주었다.

결국 , 길고 지루하던 그렇게 조용히 막을 내렸다.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계획마저 끝내 백지로 돌아갔다.

뻔했던 낡은 골목은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남았다.

시퍼렇게 이제 보일 듯한 흉터 하나만 남아 있었다.

몸이 나서야, 그는 앞서는 실적은 없다던 의사의 말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했다.

한때 소수점 아래 숫자에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아침 햇살 아래, 그는 느리게 흐르는 삶의 조용히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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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 채(로)while remaining in a certain state; with something left as it is

그는 갑자기 옆구리를 움켜쥔 채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He suddenly crumpled straight to the floor, clutching his side.

-(으)ㄹ지도 모르다might, may; expresses an uneasy possibility

골목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대결 앞에서도, 지훈은 애써 차분하게 대응 서류를 준비해 나갔다.

Even faced with this unexpected showdown — one in which he might lose the alley itself — Jihoon made himself calmly put together the papers for his defense.

-(으)ㄹ 듯 말 듯on the verge of; barely (doing or not)

시퍼렇게 멍들었던 옆구리에는 이제 보일 듯 말 듯한 흉터 하나만 남아 있었다.

On the side that had bruised such a deep blue, only one barely visible scar now remained.

-기가 무섭게the instant; no sooner than

재판이 열리기가 무섭게, 박 부장이 내세운 위생 문제는 허술한 밑바닥을 드러냈다.

The instant the trial opened, the hygiene charge Park had put forward showed its flimsy bottom.

-는 둥 마는 둥half-heartedly; doing something in a perfunctory way

가족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은 기억이 아득할 만큼, 그는 끼니를 챙기는 둥 마는 둥 늘 일 속에 파묻혀 지냈다.

So distant was the memory of sitting across from his family at dinner that he barely bothered with his meals, forever buried in his work.

-고 나서야only after doing; not until X does Y finally happen

몸이 완치되고 나서야, 그는 인명보다 앞서는 실적은 없다던 의사의 말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했다.

Only after his body had fully healed did he at last understand, whole and clear, the doctor's words that no set of numbers comes before a hum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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