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

TOPIK 5#12 · Shopping & money

제값

The Proper Price

Part 1

민서의 아버지는 삼십 년째 귀퉁이에서 손바닥만 반찬 가게를 지켜 사람이었다.

새벽마다 그는 나물이며 콩자반을 떼어 와, 반찬 하나하나의 손끝으로 꼼꼼히 셈하곤 했다.

"물건은 받아야 오래가는 법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오랜 입버릇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 자신은 단골과 정을 나누느라, 받아 날이 오히려 드물었다.

어느 혹독한 겨울 아침, 그가 도매 시장 한복판에서 쓰러진 뒤로 가게는 고스란히 민서의 몫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녀가 장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버지의 굽은 등을 어깨너머로 훔쳐본 기억이 전부였다.

질색이던 민서는, 아버지와 달리 아예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반찬마다 또렷한 적어 붙이자, 에누리에 길든 단골 할머니들은 처음엔 깎는 맛이 없다며 서운해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값을 두고 실랑이할 일이 사라진 것을 다들 오히려 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버지라면 끝내 붙이지 못했을 앞에서, 민서는 방식이 옳은지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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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문제는 언제나 돈이었다.

가게를 물려받고 보니, 당장 굴릴 턱없이 모자랐다.

다달이 상인회에 꼬박꼬박 바쳐야 하는 해도 결코 만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새벽부터 반찬을 함께 버무리는 아주머니 분의 , 그녀는 하루도 밀릴 없었다.

밀린 전기 요금을 은행 앱을 열었다가, 민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통장 이미 마이너스 언저리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 뒤, 아주머니가 딸의 등록금이 급하다며 다음 미리 달라고 조심스레 청했다.

없는 살림에도 차마 거절하지 못한 민서는, 없는 돈을 그러모아 자리에서 봉투를 쥐여 주었다.

그날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일을 진지하게 저울질했다.

결국 적은 액수나마 , 그녀는 가장 급한 .

통장을 정리하고 나서야, 그녀는 아버지가 가게를 얼마나 힘겹게 떠받쳐 왔는지 비로소 헤아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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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봄이 오자 민서는 나은 거래처를 찾아, 동트기 향했다.

비린내와 고함이 뒤엉킨 활기 속에서, 그녀는 싱싱한 생선을 도매가로 떼어 오는 요령을 하나씩 익혔다.

외상을 좀처럼 주지 않았고, 대개 물건값을 내라 요구했다.

현금이 모자랐던 민서는 자리에서 휴대폰을 열어, 상대의 대금을 .

처음으로 물량을 들이던 날, 통장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숫자를 보며 그녀는 손끝이 떨렸다.

그럼에도 도매로 떼어 오니, 반찬 하나하나의 눈에 띄게 낮아졌다.

밑지지 않으면서도 값을 낮추는 셈법을, 그녀는 그제야 몸으로 배웠다.

떠나는 손님을 붙들 궁리 끝에, 민서는 때마다 도장을 찍어 포인트를 주는 작은 카드를 만들었다.

도장을 채우는 재미에 단골들이 자주 드나들자, 한동안 썰렁하던 가게에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돌아왔다.

주말이면 상인들과 골목에 좌판을 펴고 열어, 쓰는 살림을 헐값에 나누거나 그냥 얹어 주기도 했다.

장사를 파한 저녁이면, 민서는 시장 뒤편 천천히 거닐며 아버지가 걷던 길을 되짚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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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무렵, 통째로 허물고 자리에 주상복합을 올리겠다는 골목에 나타났다.

그는 상인들의 점포를 한꺼번에 큰소리를 쳤다.

그가 내민 액수는, 상인들이 평생 만져 없을 같은 .

몇몇 상인은 자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싶어 눈빛이 흔들렸다.

며칠 뒤, 민서만 따로 불러내 봉투 하나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봉투에는 빳빳한 지폐와 상품권이 뒤섞인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상인들을 설득해 주면 따로 사례하겠다는, 요컨대 그녀부터 손길이었다.

이사 비용은 넉넉히 얹어 주겠다는 말까지 그는 서슴없이 덧붙였다.

민서는 봉투 정중히, 그러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로 밀어냈다.

실랑이 끝에 발을 헛디디며 넘어뜨려, 접시들이 요란하게 깨지고 말았다.

그는 되레 민서에게 부서진 값을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시장 어귀의 낡은 폐쇄 회로 화면에는, 그가 일부러 밀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국 부서진 진열대 값을 쪽은, 도리어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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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소동이 가라앉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상인들은 되레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꾸리고, 공동 새로 비상 조금씩 모으기로 했다.

형편이 급한 이에게는 돈에서 미리 주자는 데까지, 어렵지 않게 뜻이 모였다.

민서는 다달이 얼마씩을 잊지 않고 .

다시 열린 주말 , 예전보다 많은 이웃이 좁은 골목을 가득 메웠다.

그날 돈으로 상인들은 앉을 나무 벤치 개를 , 지나는 사람 누구나 잠시 쉬어 가게 두었다.

아버지가 말하던 ''이 돈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음을, 민서는 이제야 같았다.

또렷한 붙여 낡은 가게 앞으로, 돈으로는 끝내 없는 무언가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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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곤 하다used to do repeatedly; would (habitually) do

저녁이면 민서는 시냇가를 거닐며 아버지가 걷던 길을 되짚곤 했다.

On evenings, Minseo would stroll the streamside, retracing the path her father used to walk.

-았/었음을 …알다/깨닫다nominalized clause as the object of a verb of cognition — to realize/understand that…

그 '제값'이 돈만을 뜻하는 말은 아니었음을 그녀는 이제야 알았다.

She only now understood that the 'proper price' did not mean money alone.

-(이)나마even if only; albeit (something small or insufficient)

적은 액수나마 빚내어 관리비부터 납부했다.

She borrowed even a small sum and paid off the management fee first.

-고 말다to end up doing something (often regrettably, beyond one's intent)

대리인이 진열대를 넘어뜨려 접시들이 깨지고 말았다.

The agent knocked over the display and the dishes ended up breaking.

-고 보니having done something, one comes to realize (a discovery made only after the fact)

가게를 물려받고 보니, 당장 굴릴 자금부터 턱없이 모자랐다.

Having inherited the shop, she found herself hopelessly short of even the funds to keep it turning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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