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는 배신하지 않는다
The Hands She Turned Away
은영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 열기로 한 것은, 사람보다 덜 배신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물과 볕만 어김없이 대 주면 잎 하나 시들지 않는 그 정직함이,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안이었다.
오래 미뤄 온 꿈이었지만, 막상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도 봄이 오기가 무섭게, 그녀는 마당 한쪽에 어린 나무 다섯 심는 것으로 첫 삽을 떴다.
나무 한 한 그루가 마치 도시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대신하는 듯했다.
색색의 정성껏 옮겨 심었다.
담장 아래에는 키 큰 씨앗을 촘촘히 뿌려 두었다.
그렇게 마당이 조금씩 초록으로 채워지는 동안에도, 그녀는 이웃과 눈 한번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작은 간판을 내걸고 조촐하게 영업을 날, 정작 곁에서 축하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1
문을 연 첫 주부터 손님이 하나둘 찾아들었고, 은영의 아침은 늘 물 주는 일로 시작되었다.
뒷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길어다 뿌리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곁에 필요치 않았다.
가뭄이 들어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는 날에는, 읍내에서 상자째 사다 부었다.
이른 아침이면 잎사귀 끝마다 맺힌 햇살을 받아 잘게 반짝였다.
작은 하나에도 온 하늘이 담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도시에서의 소란은 아득한 남의 일 같았다.
나비와 벌은 물론이고 이름 모를 새까지, 온갖 그녀의 정원으로 스며들었다.
은영은 이곳을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자리로 남겨 두고 싶었다.
여름내 사람의 기분 따위 오직 해만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옆집 노인이 상추 모종을 나눠 주겠다며 몇 번이나 사립문을 기웃거렸지만, 그녀는 번번이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2
그러나 자연은 그녀가 믿은 만큼 늘 정직하지만은 않았다.
그해 여름의 끝자락, 유례없이 강한 예고했다.
오후가 되자, 예고했다시피 같은 비가 온 마당을 사납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뒤이어 몰아친 어린 나무들을 뿌리째 뒤흔들고, 화분들을 마당 이리저리로 나뒹굴게 했다.
은영은 다급히 트럭에 걸고, 실어 옮기고자 했다.
그러나 퍼붓는 밤이 깊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빗줄기 속에서 그녀는 나무 한 조차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이튿날, 정원은 처참히 무너져 모든 것이 돌아가 있었다.
애써 가꾼 하룻밤 사이에 변해 버린 것이다.
은영은 진흙 위에 주저앉아, 믿었던 것에마저 배신당한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며칠을 넋 놓고 앉아 있던 어느 아침, 사립문 밖이 문득 소란스러웠다.
옆집 노인을 앞세운 마을 사람들이 삽과 장화 차림으로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그녀가 번번이 사양했던 바로 그 손들이, 묻지도 않고 쓰러진 나무 사이로 들어섰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뜻밖의 , 은영에게는 난생처음 받아 보는 .
그녀는 다시 삽을 들어 쓰러진 나무들을 하나하나 , 이웃들은 말없이 그 곁을 지켰다.
걷어 내던 삽 끝에, 뜻밖에도 낯선 새싹 하나가 딸려 나왔다.
흙 속에 잠들어 있던 야생 씨앗이, 뒤집어 놓은 땅에서 도리어 눈을 뜬 것이었다.
파괴가 없었더라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 씨앗이라 생각하니, 은영은 저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이 났다.
복구가 끝나 갈 무렵, 그녀는 처음으로 손님과 이웃들에게 시원한 말아 대접했다.
땀 흘려 함께 일한 뒤 나눠 먹는 한 그릇은, 혼자 삼키던 어떤 끼니보다 깊은 맛이 났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 저녁이면 하늘이 붉은 곱게 물들었다.
잦아들 무렵이면, 은영은 갓 엮은 손질하며 하루를 했다.
지는 등지고 서서, 그녀는 사람과 가리지 않고 정원을 고루 적시는 그 붉은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겨울이 다가오자 마을에서는 집집이 모여 담그기 시작했다.
지난해 같으면 구경도 하지 않았을 그 자리에, 올해 은영은 처음으로 팔을 걷고 끼어 앉았다.
갓 버무린 김치에 얹어 건네받는 순간, 낯설던 마을이 비로소 집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첫눈이 내리더니, 이내 앞이 보이지 않는 변했다.
사나운 속에서도 온실 안의 무사히 겨울을 났다.
은영이 데워 밤마다 뿌려 둔 덕에, 여린 잎 하나 얼어 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첫 겨울을 함께 넘긴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듬해 봄 다시 활짝 문을 열 수 있었다.
뒷산 여전히 맑게 흘렀고, 새싹마다 아침 조롱조롱 맺혔다.
오랜만에 맑음을 알린 아침, 은영은 트럭에 다시 걸었다.
폐허는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그리고 그 시작이 끝내 사람의 손에서 왔음을, 그녀는 그제야 조용히 받아들였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나무 한 그루조차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Unable to save even a single tree, she could only stamp her feet.
예고했다시피 억수 같은 비가 온 마당을 사납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Just as it had warned, a torrential rain began to hammer the whole yard.
묘목이라도 실어 옮기고자 했다.
She meant to load up at least the saplings and move them.
봄이 오기가 무섭게, 그녀는 마당 한쪽에 어린 나무 다섯 그루를 심는 것으로 첫 삽을 떴다.
No sooner had spring come than she broke ground, planting five young trees in a corner of the yard.
첫눈이 내리더니, 이내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로 변했다.
The first snow fell, and then it soon turned into a blinding blizzard.
폐허는 원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그녀는 그제야 조용히 받아들였다.
She only now quietly accepted that the ruin had been not square one but a new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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