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할 수 없는 열흘

TOPIK 5#22 · Travel & place

셈할 수 없는 열흘

Ten Days Beyond Counting

Part 1

출판사 창립 이십 기념하는 성대한 잔치가 한창이었지만, 지영은 화려한 불빛 한가운데에서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십오 동안 원고를 매만져 편집자였지만, 요즘의 그녀는 어떤 문장을 읽어도 좀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책을 오직 판매 부수와 손익으로만 사람이 되어 있었다.

좋은 원고를 한눈에 알아보던 감각의 , 그녀 자신조차 부인할 없을 만큼 뚜렷했다.

그러나 지독한 피로의 정작 몸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이유만 되찾을 있다면 식어 버린 마음도 다시 뛰련만, 정작 그녀는 애초에 일을 시작했는지조차 까맣게 잊은 뒤였다.

잔이 부딪치고 축사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의 눈길은 자꾸만 창밖의 캄캄한 하늘로 향했다.

이대로 년을 버틴들 결국 무엇이 남겠느냐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날 지영은 태어나 처음으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을 솔직하게 인정했고, 이번만은 마음을 따르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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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questions on Part 1

Part 2

이튿날 새벽, 그녀는 지극히 배낭 하나를 꾸려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남해 끝자락의 이름 없는 , 지도에서조차 겨우 찾아낸 곳이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무척 결정이었다.

스무 무렵 이후로 이토록 앞뒤를 재지 않고 움직여 적이 있었던가 싶어, 그녀는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회사에는 이십 행사를 끝으로 오래 미뤄 휴가를 쓰겠다는 짧은 문자 통만 남겼다.

기차에 몸을 실은 그녀는, 후회 대신 오래 잊고 지낸 설렘이 가슴 밑바닥에서 조용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첫새벽 종착역에 내리자, 짭짤한 코끝을 대뜸 찔러 왔다.

바다 저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하나가 옅은 안개 속에 희미하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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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point qu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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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지영이 묵기로 곳은 물양장 끝에서 순임 할머니가 홀로 지키는 낡은 민박집이었다.

팔순을 앞둔 노인의 손은 마디마디 굵었고, 세월에 다져진 몸은 놀라우리만치 보였다.

할머니는 묻지도 않은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낮은 목소리에는 이상한 힘이 실려 있었다.

마을이 본래 아니라 먹고살던 곳이었다는 사실을, 지영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 할머니의 남편은 너머 광산에서 돌을 캐던 광부였다고 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 남자들은 곡괭이를 내던지고 배에 올라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산이 우리를 버린 뒤로는, 바다 하나가 전부였지." 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매일 아침 지영은 물가를 따라 길게 우거진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서걱서걱 몸을 눕혔고, 소리에 귀를 맡기다 보면 머릿속이 저절로 비워졌다.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홀로 시간이 그렇게 그녀에게로 슬며시 돌아왔다.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지 않고 그저 앉아 있으면, 팽팽히 조여 있던 마음의 조금씩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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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며칠이 지나자 할머니는 잡아 생선의 손질하는 법을 지영에게 넌지시 일러 주었다.

처음에는 비릿한 맨손으로 만지는 것조차 소름 끼쳤지만, 사흘이 지나자 손끝이 먼저 익숙해졌다.

저녁이면 그녀는 마을 회관에서 열리는 그물 손질 강습을 하루도 빠짐없이 .

낯선 틈에 끼어 서툰 손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배를 잡고 크게 웃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밥상은 소박했지만 언제나 넘쳐흘렀다.

지은 밥과 매콤하게 조린 생선이 김을 올리는 앞에서, 지영은 오랜만에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웠다.

어느 늦은 밤, 지영은 잠결에 문득 자신의 팔뚝을 힘껏 보았다.

낯선 평온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살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거울 얼굴에서는, 서울에서 그토록 그녀를 짓누르던 피로의 그늘이 걷혀 있었다.

지독하던 언제 있었느냐는 사라진 것이, 그녀는 도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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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questions on Part 4

Part 5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친 그녀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있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힘이 처음부터 자기 안에 있었음을,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그녀는 배낭 깊숙이 넣어 두었던 신인 작가의 원고를 오랜만에 펼쳐 들었다.

놀랍게도 서툰 문장들이 가슴을 건드렸고, 그녀는 판매 부수 따위를 조금도 않은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완전히 사람처럼, 그녀의 걸음걸이는 예전보다 한결 가볍고 .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그녀의 알아챈 동료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 전체의 .

얼마 그녀는, 좋은 원고를 오직 숫자로만 걸러 내던 낡은 방식을 바꾸자고 목소리로 제안했다.

뜻밖에도 회사는 그녀가 작은 배워 리듬을 실제 업무에 했다.

도시의 소음 한복판에서도 그녀는 이따금, 위로 붉게 솟아오르던 새벽 해를 눈앞에 선하게 떠올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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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ㄹ지도 모르다might, may ~ (a possibility the speaker is unsure of)

그 지독한 피로의 근원이 정작 몸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She dimly surmised that the root of this terrible fatigue might not, in truth, lie in her body.

-(으)련만would surely ~, and yet (a wish set against reality)

그 이유만 되찾을 수 있다면 식어 버린 마음도 다시 뛰련만, 정작 그녀는 애초에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조차 까맣게 잊은 뒤였다.

Could she but recover that reason, her cooled heart would surely beat again — and yet she had forgotten even why she took up this work.

-(으)리라shall / would surely ~ (literary resolve or conjecture)

이번만은 그 마음을 따르리라 다짐했다.

She resolved that this once she would follow that feeling.

-(으)ㄴ/는 듯(이)as if, as though

그 지독하던 무기력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그녀는 도리어 얼떨떨했다.

That the terrible listlessness had vanished without a trace, as if it had never once existed, left her, if anything, dazed.

-(으)ㄴ 채(로)while remaining in a state; leaving something as it is

그녀는 판매 부수 따위를 조금도 따지지 않은 채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She read straight through to the very last page without weighing sales figures in the slightest.

-(으)ㄹ 수밖에 없다to have no choice but to ~

남자들은 곡괭이를 내던지고 배에 올라 어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The men flung down their picks, climbed into the boats, and had no choice but to cling to f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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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questions on the who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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