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이후

TOPIK 5#24 · Friendship & love

그 여름 이후

After That Summer

Part 1

대학 산악부 오랜만에 연락이 것은, 무료하게 반복되던 나의 문득 낯설게 느껴지던 어느 늦봄이었다.

우리 가운데 누구보다 씩씩하던 수진이 드디어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스무 그해 여름의 떠올렸다.

스무 살은 지루하기만 했건만, 밤새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서로의 꿈을 털어놓던 하룻밤만큼은 별처럼 빛났다.

그때의 수진은 흔한 말과는 거리가 멀어서, 누구보다 먼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앞장서던 사람이었다.

여자가 그것이 흠일 없었고, 우리는 억척스러움을 오히려 그녀만의 귀한 여겼다.

그런 수진이 결혼이라니, 나는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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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여름 우리는 무작정 경주로 내려가, 년의 세월을 견딘 돌계단 앞에서 나란히 말을 잃곤 했다.

이튿날에는 마당을 거닐며 낡은 기와지붕 위로 번지던 노을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해가 지면 시장 골목에 자리를 잡고 김이 오르는 접시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기름진 무친 제격이거니와, 노릇하게 부친 장이면 우리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배가 부르면 누군가는 어김없이 자랑을 벌였다.

나의 유일한 어설픈 , 둘러앉은 서툰 흉내에도 아낌없이 손뼉을 주었다.

매콤한 냄새가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우던 저녁을, 나는 아직도 냄새로 먼저 기억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시절 우리를 묶어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그저 함께 견딘 사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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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르는 사이, 저마다 다른 길로 흩어졌다.

민호는 오래 품어 소설을 마침내 , 이제는 어엿한 이름을 가진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다음 작품도 예정이라며, 여전히 꿈을 좇는 사람 특유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반면 지영은 회사에 들어가 하루 종일 오르내리는 숫자와 씨름하며 지낸다고 했다.

시장의 변덕에 울고 웃는 나날이지만 나름의 보람이 있다고, 그녀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국어 교사가 태우는 십수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얼굴로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너희, 아직도 동사의 뭔지 모르지?" 하고 그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활용이니 하는 문법 용어에 우리는 약속이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길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친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비주류든 서로의 선택에 함부로 우열을 매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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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마침내 수진의 결혼식 날이 밝았고, 예식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하필 그날따라 심하게 막혔다.

정체된 겨우 빠져나와 우리는 식이 시작되기 직전에야 아슬아슬하게 예식장에 들어섰다.

되어 입장하는 수진은 눈부시게 눈빛만은 옛날 그대로 당당했다.

단상 한편에는 양가가 정성껏 주고받은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화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담긴 나이 지긋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식이 끝나고 이어진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 사이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단상에 오른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의 뜻을 정중히 .

앞으로 어떤 날에도 좋은 남편이 되겠다는 서툰 다짐이 나에게는 오래 남았다.

한편에서는 선배가 잠든 아기를 안고 보채는 아기의 틈틈이 갈아 주고 있었다.

우는 아이를 어르며 가는 능숙한 손길이 나에게는 어떤 축사보다 뭉클하게 다가왔다.

창밖에는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하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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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저녁에는 가까운 따로 조촐한 자리를 열었다.

무르익도록 우리는 옛이야기를 나누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술이 약한 나는 미리 구한 뒤, 대신 이야기로만 밤을 지켰다.

친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흔쾌히 주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 산소를 찾아 조용히 .

잡초를 걷어 내고 잔을 올리며 동안, 어제의 결혼식이 자꾸만 눈앞에 겹쳐졌다.

좋은 배우자의 대체 무엇일까, 나는 앞에 쭈그려 앉아 문득 다시 생각했다.

아무리 화려한 예식을 올린들, 값진 주고받은들, 남들이 우러르는 성공을 이룬들 그것이 답은 아닐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서로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나란히 견뎌 내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평생을 함께한 부모님 역시 그렇게 서로의 사소한 하루를 지켜 주며 살아오셨음을, 나는 뒤늦게 헤아렸다.

산소를 내려오는 길, 다음 기약하자는 문자에 답하자, 무료하던 나의 오랜만에 작은 불빛이 켜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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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들even if ~ (rhetorical: and what would it matter?)

값진 예물을 주고받은들 그것이 답은 아닐 것이었다.

Even if the families exchanged costly gifts, that, surely, would not be the answer.

-건만and yet, although (a lamenting or wistful contrast)

내 스무 살은 지루하기만 했건만, 그 하룻밤만큼은 별처럼 빛났다.

My twenties were nothing but tedious, and yet that one night alone shone like a star.

-거니와not only ~; granted that, and moreover

순대에는 새콤한 겉절이가 제격이거니와, 김치전 한 장이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Not only was tangy kimchi the perfect foil for the sundae, but one fried pancake left us wanting nothing.

-(으)ㅁ에도 불구하고despite ~, in spite of the fact that ~

화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담긴 예물에 하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Despite their being far from splendid, at the heartfelt gifts the guests nodded.

-기로서니even granting that ~; just because ~ (that is no reason to…)

여자가 좀 억척스럽기로서니 그것이 흠일 리 없었다.

Just because a woman was a bit tough, how could that be a flaw?

-(으)ㅁ을 (nominalization)turns a whole clause into a noun (the fact/act of ~), object of thought or perception

부모님이 서로의 하루를 지켜 주며 살아오셨음을 나는 뒤늦게 헤아렸다.

Only belatedly did I grasp that my parents had lived guarding each other's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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