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제의 빙하
A Glacier in the Present Tense
삼십 년 동안 남의 영상을 온 도현이, 사라져 가는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때, 그는 기쁨보다 먼저 오래된 두려움을 느꼈다.
죽어 가는 얼음을 대체 어떤 불러야 하는가—그것이 첫날부터 그를 놓아주지 않는 물음이었다.
그는 이 작품이 오직 진실만을 바랐으나, 진실은 늘 시제의 문제 앞에서 슬그머니 미끄러져 달아났다.
제작 발표회에서 그는 카메라 앞에 서서, 미리 써 둔 원고도 없이 조용히 .
"우리는 마지막을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빙하와 작별하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촬영 자금은 늘 모자랐고, 결국 그는 이십 년을 부어 온 통장째 제작비에 보탰다.
그렇게,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긴 스스로의 손으로 시작되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1
북극의 겨울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
해가 좀처럼 뜨지 않는 낮과 끝을 알 수 없는 밤 사이에서, 얼음벌판에는 오직 무거운 고여 있었다.
카메라를 잡은 지 얼마 안 된 젊은 준우는, 그 정적을 견디기 힘들다는 듯 사사건건 일정에 .
"이 얼음이 다 녹으면 우리 고생도 같이 녹을까요?" 그는 하얀 입김을 뿜으며 툴툴거렸다.
프로듀서 미래는 , 부른 배를 두꺼운 외투로 감싼 채 마지막까지 촬영장을 지켰다.
도현은 그런 그녀를 말리려다가도, 얼음 앞에 새 생명을 데려온 그 고집이 어쩐지 이 혹독한 촬영의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져 번번이 입을 다물곤 했다.
밤이 깊어지면 도현은 뿌리까지 파고드는 극심한 시달렸다.
신경을 갉는 그 통증은, 먼 곳에서 얼음장이 쩍쩍 갈라질 때 나는 소리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는 그의 곁으로 썰매를 끄는 늙은 개 한 마리가 다가와, 아무 소리도 없이 그의 손등을 .
짐승의 그 따뜻한 혀만이 추위와 쑤시는 통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마을에서 길잡이로 따라온 노인은, 도현이 여태껏 만난 누구보다도 사람이었다.
그의 말투는 낮고 느렸으나, 한마디 한마디에는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배어 있었다.
가리켜 노인은 "저것은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주 천천히 숨을 거두는 존재"라고 말했다.
얼음이 오랜 세월에 걸쳐 빚어 낸 풍경이 얼마나 , 도현은 오래도록 말을 잃고 그 앞에 서 있었다.
노인은 눈길을 천천히 걸으며 낮은 목소리로 옛 노래를 .
뜻도 모르는 그 도현이 따라 , 까닭 모를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노인은 품에서 마을의 말린 생선 한 조각을 꺼내 도현에게 말없이 건넸다.
짜고 비린 그 한 조각을 씹으며, 도현은 이 얼음의 땅에서도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3
촬영이 반년째에 접어들 무렵, 건네받은 십 년 전의 곱절을 가리키고 있었다.
숫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으나, 그 차가운 숫자 앞에서 도현은 오히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내레이션의 놓고 밤마다 홀로 씨름했다.
과거로 떠나보낼 것인가, 아니면 현재로 붙들어 둘 것인가—그 선택은 곧 이 얼음의 운명을 판결하는 일처럼 무거웠다.
인류가 이 얼음에 이미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확정된 뒤에 그 이름을 현재형으로 부른다 한들 꺼져 가는 숨이 되살아나지는 않으련만, 그럼에도 그것은 부질없는 미련일까, 아니면 마지막 예의일까.
세상이 편의를 위해 이 진실을 함부로 왜곡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고,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놀랍게도, 그 무렵 가장 먼저 달라진 사람은 줄곧 준우였다.
어느 새벽, 그 유난히 깊었기에 준우는 드론을 말고 카메라마저 내려놓은 뒤 오래도록 얼음을 바라보았다.
"감독님, 이건... 그냥 찍는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늘 그의 말끝에 돋아 있던 가시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반년의 끝에 촬영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도현은 수천 시간의 영상을 밤을 새워 가며 정성껏 , 끝까지 그의 손끝을 떨게 한 것은 역시 문제였다.
그는 끝내 현재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완성된 다큐멘터리는 요란한 음악도 친절한 설명도 없이, 다만 긴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도현은 이 작품이 오직 진실만을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웠다.
이듬해 그는 한 국제 영화제의 .
무대에 오른 그는, 오래전 그 발표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조용히 .
" 것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은, 그저 겸손해지는 것뿐입니다."
그제야 그는 얼음을 살아 있는 존재라 부르던 노인의 말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반년 동안 지나쳐 온 사소한 것들이 실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미래는 그사이 건강한 딸을 낳아, 싼 아기를 안고 시사회 자리에 나타났다.
아기에게 지어 준 이름은, 공교롭게도 어느 북방 말로 '얼지 않는 물'을 뜻한다고 했다.
그날 밤, 도현을 오래 괴롭히던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늙은 썰매 개는 여전히 그의 손등을 정답게 했고, 도현은 그 서툰 애정 앞에서 매번 코끝이 시큰해졌다.
세상은 그의 다큐멘터리를 두고 예술이자 뜨거운 경고라 평했지만, 정작 도현은 그저 한 노인에게서 배운 예의를 화면에 옮겼을 뿐이라고 여겼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미래는 부른 배를 두꺼운 외투로 감싼 채 마지막까지 촬영장을 지켰다.
Mirae kept to the set until the very end, her swollen belly wrapped in a thick coat.
그 정적이 유난히 깊었기에 준우는 카메라마저 내려놓았다.
Because that silence had grown especially deep, Junwoo set even the camera down.
얼음이 빚어 낸 풍경이 얼마나 이색적이던지, 도현은 오래도록 말을 잃었다.
The landscape the ice had shaped was so otherworldly that Dohyun was left speechless a long while.
현재형으로 부른다 한들 꺼져 가는 숨이 되살아나지는 않으련만.
Calling it in the present tense would surely not bring the fading breath back to life, and yet ...
인류가 이 얼음에 이미 사형을 언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Humankind, he thought, had as good as pronounced a death sentence on this ice already.
Take the final quiz
3 questions on the who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