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이미 죽었다
The River Is Already Dead
이름도 적히지 않은 편지 한 통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그 밤을, 지수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작은 지역 신문사의 기자로 십 년을 버틴 그녀에게도, 제보란 대개 허풍이거나 해묵은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편지에 적힌 단 한 , 그녀의 손끝을 오래 붙들었다.
"강은 이미 죽었고, 다음은 사람이다." 편지에는 그뿐, 서명도 날짜도 없었다.
글씨는 떨렸으나 문장은 이상하리만치 정갈했고, 편지를 보낸 이의 정체는 끝내 .
강 건너 화학 공장이 밤마다 정체 모를 토해 낸다는 소문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었다.
넉넉지 못한 취재비 한 푼이 아쉬울망정, 이번만은 그 소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싶다는 오래된 허기가 계산보다 앞섰고, 그녀는 결국 이 일에 깊이 마음먹었다.
이튿날 새벽, 그녀는 낡은 카메라 하나만 챙긴 채 강 건너 마을로 향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1
마을은 소문보다 훨씬 깊이 병들어 있었다.
누렇게 죽은 강물 위로는 물고기 한 마리 떠오르지 않았고, 물가에서 숨 쉬는 파리 떼뿐이었다.
노인들은 근래 들어 앓아눕는 사람이 늘었다며, 지수의 소매를 붙들고 하소연을 쏟아 냈다.
어느 집에서는, 일어설 기력조차 없는 할머니가 차가운 방바닥을 천천히 .
지수는 그 처참한 광경을 한 장 한 장 사진에 담으면서도, 자꾸만 셔터를 누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집 마당 한구석에는, 녹슨 한 자루가 오래전에 버려져 나뒹굴고 있었다.
주인은 평생 산에서 나무를 하던 할머니의 남편이었다고, 옆집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일러 주었다.
그는 공장이 들어선 뒤 산이 헐벗고 물이 썩어 가는 꼴을 견디다 못해, 짧은 한 장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 마지막 문장은, 지수가 받은 편지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편지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지수는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마을을 떠난 뒤로도, 지수는 밤마다 자료 더미에 파묻혀 회사의 뒤를 .
공장을 세운 회사는 수십 년 동안 이 일대의 숲을 마구 베어 넘기며 땅을 온 터였다.
규제를 피해 몰래 흘려보낸 탓에, 강물뿐 아니라 마을의 공기마저 서서히 병들어 갔다.
놀랍게도 그 뒤에는, 힘 있는 정치인들의 든든한 배경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국경 너머 자본과도 은밀히 손을 잡고 있었지만, 정작 서구의 어떤 언론도 이 작은 마을의 죽음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증권 시장에서 그 회사의 여전히 안전한 주식으로 분류되어, 높은 값에 활발히 거래되고 있었다.
한 도시의 강을 죽인 기업이 다른 도시의 투자자에게는 안전한 팔린다는 사실이, 지수는 오래도록 역겨웠다.
그녀는 회사 간부들이 오염을 처음부터 알면서도 눈감아 왔음을, 내부 문서 한 장으로 마침내 확인했다.
한 장씩 쌓여 갈수록, 그녀를 뒤쫓는 시선도 그만큼 늘어 갔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3
지수의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대표의 구속 청구했다.
법원이 압수 수색 발부하기가 무섭게, 수사관들이 이른 아침 공장으로 들이닥쳤다.
수사관들은 회사가 미처 손쓰기도 전에, 핵심 서류를 확보했다.
궁지에 몰린 회사는 삭제한 파일을 못하도록 서버를 통째로 부숴 버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서진 조각에서 대부분의 자료를 끝내 냈고, 회사의 마지막 방패는 그렇게 허물어졌다.
소식이 퍼지자, 버티던 회사의 주가는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
대표의 구속은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안겼고, 그와 얽힌 여러 잇따라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는 것은 숫자로 된 주가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값으로 환산해 온 어떤 믿음이기도 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몇 달 뒤, 한 시민 단체가 마을 회관에서 큰 열었다.
모인 사람들은 무너진 강과 마을을 어떻게 되살릴지를 두고 밤늦도록 머리를 맞댔다.
지수는 맨 뒷자리에 앉아,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 제보자에게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사람이 주인이 남긴 품고 살아온 딸이었으리라고, 그녀는 다만 짐작할 뿐이었다.
드디어 재판의 마지막 날, 오래 미뤄지던 마침내 내려졌다.
판사는 회사의 유죄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 뒤, 한 유난히 힘주어 낭독했다.
" 침묵보다, 불편한 언제나 낫다."
그 한 문장은, 죽은 나무꾼의 편지를 지나 마침내 법의 언어로 되살아난 셈이었다.
이듬해 봄, 강에는 작은 하나둘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맑아진 물살을 어린 물고기 떼가 은빛으로 헤엄쳐 다녔다.
한때 방바닥을 그 할머니도, 이제는 지팡이를 짚고 마당까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넉넉지 못한 날들을, 지수는 그 봄볕 아래에서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그녀는 낡은 카메라 하나만 챙긴 채 강 건너 마을로 향했다.
She set off for the village across the river with nothing but an old camera in hand.
법원이 압수 수색 영장까지 발부하기가 무섭게, 수사관들이 공장으로 들이닥쳤다.
No sooner had the court issued a search-and-seizure warrant than the investigators descended on the plant.
취재비 한 푼이 아쉬울망정, 이번만은 그 소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Even if she begrudged every penny of expenses, this once she could not let the rumor simply pass.
그는 산이 헐벗고 물이 썩어 가는 꼴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Unable to bear watching the mountain stripped bare and the water rot, he took his own life.
그 한 문장은 마침내 법의 언어로 되살아난 셈이었다.
That one sentence had, in effect, been reborn at last in the language of the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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