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비친 얼굴

TOPIK 5#34 · Hobby & play

유리창에 비친 얼굴

The Face in the Glass

Part 1

준서의 손끝에서 카드 장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자, 실험실에 모여 있던 친구들은 일제히 질렀다.

자락의 대학에서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지만, 캠퍼스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그저 ''라고 불렀다.

낮에는 현미경 앞에서 세포를 들여다보고 밤이면 손끝으로 카드와 동전을 부리는 이중생활이, 그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자취방 책상 위에는 언제나 손바닥만 인형이 놓여 있었다.

홀로 떠난 여행에서 인형을, 그는 무대에 오르기 전마다 습관처럼 쓰다듬곤 했다.

인형 벽에는 화려한 야경과 파리 담은 사진 장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언젠가 아래 무대에서 자신의 선보이는 것, 그것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의 오랜 소망이었다.

그날 밤도 그는 침대에 누워 만지작거리며 채널을 돌렸지만, 머릿속은 온통 다음 공연 생각뿐이었다.

실험실 동기들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밤이 깊도록 , 준서는 그런 소란이 싫지 않았다.

무언가를 손끝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재주만큼은, 누구도 그를 따라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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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평온이 깨진 것은, 학과 사무실에서 값비싼 실험 기구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 때문이었다.

며칠 뒤, 학과 게시판에 이름도 없는 하나가 올라왔다.

글쓴이는 사건이 있던 준서가 실험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며, 그를 대놓고 지목했다.

' 이번엔 남의 물건을 사라지게 모양이지?' 그렇게 있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준서의 손끝이, 카드를 때와는 사뭇 다르게 떨렸다.

사건이 일어난 바로 시각, 그는 둘레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것을 증언해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었다.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 이상, 그가 아무리 주장한들 말을 믿어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은 .

그는 그날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천장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며칠째 면도조차 잊은 그의 턱에는, 텁수룩한 거뭇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다음 날, 그는 마음을 다잡고 실험실 동기들과 함께 진실을 파헤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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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단서는 뜻밖에도, 복도 천장에 매달린 낡은 카메라에 남아 있었다.

준서와 친구들은 찾고자 사건 당일의 화면을 번이고 되감아 가며 장면씩 뜯어보았다.

화면 속에서 사내가 벽에 걸치고 창문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창을 비틀어 여는 법한 쇠막대가 들려 있었는데, 언뜻 보였다.

사내가 몸을 돌리는 찰나, 유리창이 그의 옆얼굴을 어렴풋이 냈다.

놀랍게도 흐릿한 옆모습은, 빚에 쫓겨 여기저기서 선배 기훈과 닮아 있었다.

빚에 몰린 기훈이 돈이 만한 기구를 훔치려 몰래 실험실에 숨어들었다면, 모든 앞뒤가 들어맞았다.

다만 얼굴이 너무 흐릿한 탓에, 사내를 기훈이라고 에는 아직 일렀다.

화면 덕분에 준서가 것만은 분명해졌지만, 진짜 밝히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친구들이 영상을 모니터에 띄우려 집어 때, 준서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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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준서가 떠올린 것은, 기훈을 곧장 학과에 고발하는 길이 아니었다.

그는 흐릿한 화면을 증거로 들이밀어 선배를 궁지에 모는 대신, 그에게 스스로 밝힐 주기로 했다.

"형이 직접 말할지, 아니면 우리가 화면을 내놓을지, 형에게 있어요."

기훈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고 망설이다가,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

잃었던 자신이 부끄럽다며, 그는 준서 앞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거짓 올린 사람 또한 기훈이었다는 사실이, 이제 드러났다.

학과는 삭제했고, 준서를 향하던 의심의 눈길도 그렇게 걷혔다.

며칠 동안 그를 이들은, 뒤늦게 겸연쩍은 얼굴로 그에게 사과했다.

그제야 준서는 거울 앞에 서서, 그동안 텁수룩하게 자란 말끔히 밀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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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학기가 저물 무렵, 준서에게 뜻밖의 초대장 장이 날아들었다.

도자기로 이름난 도시 열리는 축제의 무대에 달라는 초대였다.

무대에 오른 그는 조선시대 임금으로 , " 납시오!" 하는 우렁찬 외침과 함께 등장했다.

관객들은 그를 진짜 라도 되는 우러러보며 크게 환호했다.

그는 무대 한가운데 놓인 성큼 올라, 거울로 조명을 펼쳤다.

거울이 빛을 때마다, 어두운 객석 곳곳에서 짧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가 오래 갈고닦은 핵심은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찰나의 있었다.

완벽한 그가 손을 펴자 비둘기 마리가 날아올랐고, 축제장은 이내 환호로 뒤덮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친구들은 신이 나서 밤늦도록 그의 대해 .

누군가는 극장에서, 누군가는 파리 아래에서 공연해 보라며 그를 부추겼다.

사람들은 그날 비로소, 위기 앞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준서의 알아보았다.

무대의 진짜 사라진 카드가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선배에게 스스로 돌아설 길을 내어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미소 지으며 그는, 언젠가 아래에 자신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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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는 이상given that / as long as (a premise that forces the conclusion)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 이상, 아무리 무죄를 주장한들 믿어 줄 사람은 없었다.

As long as there was nothing to back it up, however loudly he protested his innocence, no one would believe him.

-(으)ㄴ 채(로)while left in a certain state; with something kept just as it is

그는 그날 밤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천장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That night he glared endlessly at the ceiling, without so much as a wink of sleep.

-고자with the intent to; in order to (formal, literary)

준서와 친구들은 범인을 찾고자 사건 당일의 화면을 몇 번이고 되감아 보았다.

Set on finding the culprit, Junseo and his friends rewound that day's footage over and over.

-(으)ㄹ 법하다to be plausible; the sort of thing that could well be so

창을 비틀어 여는 데 쓸 법한 쇠막대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In his hand was a metal rod of the sort you'd use to pry a window open.

-(으)ㄹ지an embedded question of whether or which — laying out the alternatives

형이 직접 말할지, 아니면 우리가 이 화면을 내놓을지, 선택권은 형에게 있어요.

Whether you say it yourself or we hand over this footage — the choice is yours, hyung.

-(으)ㄹ지도 모르다might; perhaps it is so — a hedged possibility

진짜 마술은 선배에게 스스로 돌아설 길을 내어 준 그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Perhaps the real magic was the heart that left the senior a way to turn back on hi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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