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을 트는 손

TOPIK 5#35 · Art & music

신청곡을 트는 손

The Hand That Plays the Requests

Part 1

아버지에게서 가게를 날, 지훈은 자신이 물려받은 것이 재산이 아니라 오래된 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매의 태어났기에, 그에게 가게를 잇는 일은 선택이라기보다 정해진 순서에 가까웠다.

먼지 앉은 벽을 가득 메운 가게는, 한때 동네의 불릴 만했다.

손님들은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듯 종이에 적어 내밀곤 했고, 아버지는 곡을 찾아 트는 일을 하루의 낙으로 삼았다.

선반 한쪽에는 우주선과 번쩍이는 낡은 영화 테이프가 꽂혀 있었는데, 어릴 지훈이 번이고 돌려 보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볕이 들지 않는 가게는 사철 , 눅눅한 공기 속에서 테이프도 사람도 함께 낡아 갔다.

집안의 지은은 그런 오빠와 그런 가게를,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끌어안고 사는 여겼다.

"이렇게 데를 요즘 누가 찾아, 오빠." 지은의 말에는 걱정과 핀잔이 반씩 섞여 있었다.

지훈이라고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갈아 끼우던 손길까지 함께 내다 버리는 일이, 그에게는 아직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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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며칠 뒤, 밀어 넣고 우편물 사이에서 두툼한 장이 유독 무겁게 손에 잡혔다.

달째 밀린 전기 요금 .

게다가 건물 찾아와, 다음 달부터 월세를 크게 올리겠노라 통보하고 돌아갔다.

지훈은 붙들고 한참이나 월세를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다.

"세를 맞추면 가게를 이대로 않을 겁니다." 남기고 말이 종일 그의 등을 .

하필 무렵, 아버지의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가족이 잔치 준비로 들뜬 사이, 지훈은 가게의 사정을 차마 밖에 내지 못하고 홀로 속을 끓였다.

어머니는 잔치에 커다란 항아리 가득 담가 두고, 계핏물이 우러나기를 며칠이나 기다렸다.

지은은 어머니께 드릴 고르다가, 오래전 아버지가 가게 수입으로 어머니께 똑같은 귀고리를 주었다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가게는 단순한 점포가 아니라, 집안의 지난 오십 년이 배어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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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일주일 앞둔 밤, 아버지가 가슴을 움켜쥐며 통증을 호소했다.

가족은 한밤중에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로 내달렸다.

의사는 정밀 검사에 앞서 우선 가슴 찍어 보자고 했다.

다행히 이상이 드러나지 않았고, 오랜 흡연으로 말미암아 폐가 조금 상했을 뿐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지훈은 아버지의 야윈 손을 채, 가게 걱정에 파묻혀 정작 아버지의 안색 하나 살피지 못한 자신이 느껴졌다.

"혼자 짊어지고 끙끙대는 , 오빠." 지은이 그의 곁에 놓인 보호자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와 노인이 소식을 듣고 병실로 찾아왔다.

젊어서부터 가게를 드나들던 벗은, 사람이 함께 듣던 노래들을 하나하나 읊으며 아버지의 손을 오래 붙잡았다.

노인은 품에서 사진 장을 꺼냈는데, 가게가 문을 열던 한가운데에서 활짝 웃던 젊은 아버지가 거기 담겨 있었다.

사진 어머니의 귀에는 아버지가 주었다던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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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아버지가 퇴원하자, 남매는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가게를 되살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짐스럽게만 여기던 지훈의 낡은 컬렉션이, 뜻밖에도 가장 되었다.

요즘 젊은 손님들이 감성의 일부러 찾아 듣는다는 사실에, 지은이 먼저 것이다.

지은은 동네 청년들을 모아, 가게 벽을 새로 칠하는 꾸렸다.

청년들은 지훈이 아끼던 영화의 포스터로 벽을 덮고, 우주선과 그려진 커다란 간판을 손수 만들어 달았다.

모양의 간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의 새로운 입소문을 탔다.

지훈은 손님이 낯선 외국 노래를 적어 오면, 노랫말의 사연을 곁들여 찬찬히 들려주었다.

가사의 알고 손님들은 같은 곡을 전혀 다른 노래처럼 다시 들었고, 그제야 지훈은 아버지가 일을 평생의 낙으로 삼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한때 팔리지 않아 짐이던 것들이, 이야기를 입고서야 비로소 쓸모를 얻은 셈이었다.

다시 문을 여는 날, 좁은 가게 앞은 구경 사람들로 디딜 없이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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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그리고 며칠 뒤, 가족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아버지의 잔치를 열었다.

한가운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버지가 오십 사진 모습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은이 가족을 대표해 축하 인사를 낭독하는 동안, 어머니의 귀에는 다시 걸려 있었다.

어머니가 며칠을 공들여 담근 , 잔치 내내 손님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벗도 곁에 나란히 앉아, 사진 그날처럼 함께 늙은 얼굴로 웃었다.

아버지는 오래된 젊은 시절 즐겨 듣던 곡을 틀어 달라 청했다.

지훈은 노래의 아버지의 지난 오십 년에 빗대어 설명하다가, 끝내 목이 메었다.

"가게든 사람이든, 소중한 함부로 말아라. 손길이 닿는 오래가는 법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등을 가만히 두드렸다.

가게를 부끄러워하던 지은은, 이제 그곳을 동네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여기게 되었다.

볕도 들지 않아 자리는, 어느새 젊은이와 노인이 나란히 적어 내는 온기 어린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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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으)ㄴ 채(로)while staying in a certain state; with something left just as it is

아버지의 야윈 손을 쥔 채, 가게 걱정에 파묻혀 있었다.

He stayed buried in worry over the shop, his father's thin hand still held in his own.

-는 한as long as, so long as (the condition holds)

소중한 건 손길이 닿는 한 오래가는 법이다.

A precious thing lasts as long as a hand keeps reaching for it.

-기에because, for (formal/literary reason)

삼 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기에, 가게를 잇는 일은 정해진 순서에 가까웠다.

Because he was born the eldest son of three, keeping the shop going was close to a fixed order of things.

-(으)로 말미암아owing to, on account of (literary cause)

오랜 흡연으로 말미암아 폐가 조금 상했을 뿐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The diagnosis was that, owing to years of smoking, his lungs had merely worn a little.

한다체 대화 (-아라/-느냐)plain-style speech act — an elder's warm, direct address

소중한 건 함부로 가만두지 말아라.

Never carelessly leave a precious thing be.

-(으)ㄹ 뿐이다it is merely / only the case that…

그 손길까지 내다 버리는 일이 아직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Throwing out even that touch of his hands was simply something he could not yet bring himself to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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