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마음
The Heart Has Ears
소연과 외사촌 다인의 가 유별나다는 것은, 두 어머니가 자매인 에서는 굳이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방학이 시작되면 둘은 어김없이 할머니의 낡은 기와집으로 모여들었다.
그 집의 밤은 언제나 할머니가 나지막이 풀어놓는 로 깊어 갔다.
화로 앞에 나란히 앉으면, 가 나오고 가 뒤따르는 이야기가 밤새 이어졌다.
그 이야기의 결말이 하도 기에, 두 아이는 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곤 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다인은 '하나만 더!' 하며 다음 이야기를 졸라 댔다.
소연은 무서움을 꾹 참으며, 할머니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오래도록 귀를 기울여 다.
이야기란 눈이 아니라 귀로 듣는 것이라는 사실이, 소연은 어쩐지 마음에 쏙 들었다.
낮이 오면 둘은 마루에 엎드려 그림책에 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중에서도 소연은 하늘을 파랗게 칠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해, 파란색만은 아무리 칠해도 물리는 법이 없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1
할머니가 그 숱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아끼던 것은, 앞 못 보는 늙은 의 이야기였다.
그 는 눈이 멀었어도 귀가 유난히 밝아, 사람의 숨소리만 듣고도 그 속마음을 훤히 알아챘단다.
이야기 속 임금의 곁에는, 오로지 제 눈과 힘만 믿는 이 하나 버티고 있었다.
가 다가올 화를 넌지시 일러 주어도, 은 '눈먼 자의 말이 다 무슨 소용이오? 죄다 요!' 하며 을 쳤다.
할머니가 그 대목에서 목소리를 착 낮추면, 두 아이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그러나 임금은 끝내 제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고, 의 말을 예사로 흘려듣고 말았다.
뒤늦게 재앙이 들이닥치고 나서야, 임금은 고개를 저으며 을 호되게 나무랐다.
두 목소리를 능청스레 오가는 할머니의 입담은 혼자 하는 처럼 서, 손주들은 번번이 배를 잡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야기의 맺음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 '얘들아, 마음이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거란다.'
소연은 그 말이 좋으면서도, 어째서 사람들은 끝내 의 말을 믿지 못했을까 오래 곱씹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2
세월이 흘러, 소연은 어느새 대학의 가 되었다.
강의가 없는 낮이면 그녀는 으레 식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 무리의 중심에는 소문난 미주가 있어, 캠퍼스의 온갖 연애사가 그녀의 입을 거쳐 퍼지곤 했다.
어느 흐린 오후, 미주가 목소리를 은근히 낮추더니 남의 연애 이야기로 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야, 내가 어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길래 하는 말인데…' 미주가 소연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였다.
소문인즉, 소연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다는 이야기였다.
남을 흉보는 라면 질색이던 소연이었지만, 이번만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처음에 소연은 그럴 리 없다며, 그건 새빨간 라고 딱 잘라 부정했다.
눈에 보이던 그의 다정함만을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소연은 귀에 들리는 소문을 한사코 밀어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릴 적 그 이야기가 왜인지 자꾸만 되살아났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3
그러나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소문은 끝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눈에 보이던 다정함이 거짓이었음을, 소연은 두 눈으로 낱낱이 확인하고서야 겨우 인정할 수 있었다.
그 한 사람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소연의 단단하던 일상은 하루아침에 폭삭 무너져 내렸다.
크게 소연은 방문을 걸어 잠근 뒤, 며칠이나 이불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 언니를 다인이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다인은 한걸음에 달려와 방문을 두드리며, 그깟 남자 때문에 울 기운이 있거든 차라리 나랑 자고 큰소리를 쳤다.
소연이 됐다고 힘없이 지만, 다인은 들은 척도 않고 다짜고짜 소매부터 걷어붙였다.
'내가 이렇게 옆에 붙어 있는 한, 언니가 그깟 놈 때문에 우는 꼴은 절대 못 봐. 그러니까 .' 다인이 소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지는 사람이 방을 치우기로 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더니, 소연도 모처럼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다인은 소연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수 곱게 빗겨, 가방에서 꺼낸 을 정성스레 꽂아 주었다.
어릴 적 소연이 그토록 좋아하던, 그림책 하늘을 꼭 닮은 파란색 이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4
그 주 주말,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러 함께 길을 나섰다.
지하철에 오르자, 다인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소연의 어깨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마침 이 죄다 차 있던 터라, 소연은 서 계신 노인에게 얼른 제 자리를 양보하고 손잡이를 잡았다.
잠결의 다인이 '언니, 여기… 아니었어?' 하고 잠꼬대처럼 웅얼거리는 통에, 소연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을 밀자, 어린 날 이불 속에서 맡던 옛이야기 냄새가 코끝으로 훅 끼쳐 왔다.
그날 밤, 소연은 끝내 할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을 죄다 털어놓으며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손녀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내리며, 세상 풍파야 다 지나가는 법이라고 나직이 이르셨다.
소연이 속엣말을 다 털어놓은 이상, 더 감출 것도 없다는 듯 할머니는 오래 묵은 기억 하나를 꺼내셨다.
소연이 어릴 적 를 이 외갓집에서 자랐다는 것을, 다인은 익히 알면서도 그 무게만은 이제껏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의 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밤마다 귀로 들려오던 할머니의 사랑이 오래도록 대신 채워 준 것이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세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웠고, 곁에 두 사람이 있으니 어릴 적 그토록 무섭던 도 이제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어린 날의 가 고스란히 스민 그 의 밤은, 눈으로는 끝내 다 보지 못한 사랑을 소연이 마침내 온몸으로 알아듣는 밤이기도 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그 이야기의 결말이 하도 오싹했기에, 두 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곤 했다.
Because the endings of those tales were so chilling, the two children would grip each other's hands tight.
내가 어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길래 하는 말인데…
I'm only bringing it up because I saw it clear as day with my own eyes yesterday...
그 한 사람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소연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Owing to that one person's betrayal, Soyeon's daily life caved in overnight.
내가 이렇게 옆에 붙어 있는 한, 언니가 우는 꼴은 절대 못 봐.
As long as I'm stuck right here beside you, I won't watch you cry.
소연이 속엣말을 다 털어놓은 이상, 더 감출 것도 없었다.
Now that Soyeon had said everything on her heart, there was nothing left to hide.
마음이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거란다.
The heart, you see, is not a thing you see with your eyes but a thing you hear with your ears.
Take the final quiz
5 questions on the whol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