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
The Hunter and the Hunted
도민은 이십 년을 무대 위에서 늙어 온 배우였지만, 요즘 그가 맡은 배역은 오직 하나, 쫓기는 남자였다.
무대 밖에서도 그는 늘 무언가에 쫓겨 살았는데, 그를 가장 집요하게 쫓는 것은 .
화려하던 시절은 진작 지나갔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산더미 같은 .
그날 아침에도 현관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 뒤로 우체부가 붉은 딱지가 붙은 한 통을 내밀었다.
봉투 속에는 밀린 빚을 당장 갚지 않으면 살림을 , 얼음장처럼 차가운 통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 아침에도 창밖의 하늘만은 얄미울 만큼 .
도민은 그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다, 문득 며칠 전 날아든 한 통의 떠올렸다.
요즘 세상에 , 그 낡은 방식부터가 그를 부른 극단이 얼마나 시대에 뒤처졌는지를 말해 주는 듯했다.
"복귀작의 주연을 맡아 주게"라는 짧은 한 문장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스무 해 전 그를 키운 그 , 하필 그가 바닥까지 가라앉은 지금 손을 내민 것이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1
올리려는 작품은, 한 아이를 범인이 형사와 벌이는 쫓고 쫓기는 추리극이었다.
극 중에서 범인은 그 아이를 삼아 놓고, 자신을 쫓던 형사를 도리어 함정에 빠뜨린다.
아이를 잡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 범인은, 도민이 평생 연기해 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범인이 손에 쥐는 권총은 진짜와 꼭 닮았지만, 실은 소품실에서 굴러다니던 .
젊은 무대 담당이 뒤에서 ""라고 부를 만큼 괴팍한 사람이었다.
그는 배우들에게 대본을 완벽히 못하면 무대에 세우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도민은 쓰러질 지경이 되도록 밤을 새워 가며 그 방대한 대사를 한 줄도 빠짐없이 .
그럼에도 도민의 흘러간 실수들을 들추며, 여전히 그를 한물간 배우로 .
다 저문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도민에게는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마음을 속으로 꾹 누른 채, 오직 연습에만 매달렸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2
무대 위에서만큼은, 도민은 쫓기는 자가 아니라 처음으로 쫓는 자였다.
놓고 상대를 몰아가는 범인을 연기하는 동안, 그는 문득 어린 시절의 떠올렸다.
골목의 그는 늘 술래였고,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도 끝내 아무도 잡지 못하곤 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삶은 그를 늘 술래 자리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 무렵 안에는 연출가와 한 여배우의 관한 소문이 은밀히 돌고 있었다.
도민은 그 이야기가 있음직하지 않은 소리라 여겨, 누구에게도 옮기지 않았다.
쫓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그에게, 그런 소문이야말로 사람을 노리는 또 하나의 보였던 것이다.
연습을 마치고 나선 어느 저녁, 그는 높은 하늘을 유유히 도는 한 마리를 올려다보았다.
바람을 타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의 이대로 곤두박질치지만은 않으리라 되뇌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첫 공연을 앞둔 오후, 도민은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짧고 잘랐다.
머리와 날 선 눈매는, 거울 속의 그를 순식간에 그 범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침내 막이 오르자, 극장의 객석은 빈자리 하나 없이 들어찼다.
도민은 온몸을 내던지듯 혼신의 펼쳤고,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그에게 빨려 들었다.
절정의 장면에서 권총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지만, 그는 눈빛 하나 흔들지 않고 마지막 대사를 토해 냈다.
그리고 대사가 끝나는 순간, 그의 몸은 힘없이 무대 위로 허물어졌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육체가 끝내 만 것이었다.
극단 사람들은 그를 큰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마땅한 도무지 없었다.
결국 "" 소리를 듣던 그 제 낡은 차를 몰고 나와, 쓰러진 도민을 뒷좌석에 뉘였다.
응급실 의사는 그를 흘깃 보고는 그저 과로로 따름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 안이한 진단은, 머지않아 명백한 드러났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4
도민의 심장 깊은 곳에는 오래 숨어 있던 병이 있었고, 하마터면 그 병을 영영 가릴 뻔했다.
다행히 큰 병원의 의사들이 제때 병을 찾아내 그를 살려 냈다.
눈을 뜬 그의 병실 창으로는, 첫 공연 날 아침의 그 하늘처럼 가을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복귀작은 예상을 뒤엎고 대성공을 거두었고, 신문마다 그의 온갖 화려한 말로 .
한 평론가는, 도민의 삶이야말로 그 어떤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라고 적었다.
며칠 뒤, 그토록 집요하던 뜻밖에도 병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밀린 천천히 갚아도 좋으며, 이자만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도민은 그 뜻밖의 호의가 마치 믿기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 그가 얼떨떨하게 묻자, 처음으로 엷게 웃었다.
" 무슨. 무대에서 쓰러지면서도 대사를 끝까지 뱉는 걸 봤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바뀌었을 거요."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아니라, 도민이 제 스스로 끌어당긴 결과였는지도 몰랐다.
얼마 뒤, 머리로 다시 무대에 오른 그를, 이제 누구도 한물간 배우로 않았다.
Vocabulary
Grammar notes
그는 괘씸한 마음을 꾹 누른 채 오직 연습에만 매달렸다.
He clung to rehearsal alone, that indignant feeling still pressed down inside.
도민은 쓰러질 지경이 되도록 밤을 새워 가며 대사를 숙지했다.
Domin learned the lines by heart, staying up nights to the point of collapse.
다 저문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도민에게는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Being treated as a man already finished was utterly galling to Domin.
의사는 그저 과로로 탈진했을 따름이라고 진단했다.
The doctor diagnosed that he had merely collapsed from overwork.
도민은 그 불륜 이야기가 있음직하지 않은 소리라 여겼다.
Domin deemed the talk of an affair an implausible tale.
도민의 삶이야말로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수식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Domin's own life was a drama no flowery phrase could ever embel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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