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탈

TOPIK 5#49 · Work & school

붓과 탈

The Brush and the Mask

Part 1

소율은 사소한 단서 하나로도 사건의 전말을 곧잘 내는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를 '추리의 '이라 불렀다.

물론 이름이 무색하게, 그녀가 푸는 사건이란 대개 사라진 실내화나 뒤바뀐 우산 같은 것들이었다.

소율의 할아버지는 오래전 병원을 접은 노의사였다.

은퇴한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는 낡은 하나를 서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

이따금 그는 손녀의 등에 대고 심장 소리를 듣는 척하며, 집안에 대대로 전해 오는 옛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우리 집안에는 말이다, 억울하게 떠난 계셨단다."

곧은 성품이 화근이었는지, 걸려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고 말았다.

섬으로 쫓겨나던 날, 그의 손에 들린 것이라고는 벌과 자루를 작은 전부였다.

흙바닥에 엎드려 지내는 나날은 견디기 힘든 이었지만, 그는 밤마다 붓으로 무언가를 적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고, 소율은 조상이 대체 무엇을 그토록 적었을지 오래도록 궁금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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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그해 가을, 학교에 난데없는 사건이 터졌다.

여러 학생의 값나가는 물건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없어진 것은 하나같이 반지나 목걸이 같은 자잘한 .

이상한 점은, 자물쇠를 부수기는커녕 손끝 하나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소율이 눈여겨보니, 물건이 없어진 날은 하나같이 학생들이 열어 두고 자리를 비운 날이었다.

경찰은 범인을 잡겠다며 학교 담벼락 아래에서 며칠 밤을 .

그러나 그림자조차 밟히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신이 나서 달려들었을 사건 앞에서, 그녀는 웬일인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실마리를 좇을수록 사건은 얽히기만 했고, 소율은 난생처음 마주한 기분이었다.

'추리의 '이라는 별명이 이토록 느껴진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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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그날 저녁, 할머니가 감기 기운에 좋다며 따뜻한 잔을 머리맡에 놓아 주었다.

소율은 그것을 홀짝이며 학교 올라온 축제 사진을 하나하나 .

며칠째 마음에 걸리던 흐릿한 그림자를, 그녀는 수십 장의 사진 속에서 끈질기게 뒤졌다.

화면을 넘기고 넘겨도 좀처럼 잡히지 않던 무언가가, 옆에서 짝꿍의 한마디에 불현듯 모습을 드러냈다.

"야, 그날 쓰고 어슬렁대던 애, 너도 봤지?"

짝꿍이 던진 말이었지만, 한마디는 어두운 방에 성냥을 그은 같았다.

그렇지, 축제였다.

주에 열린 학교 축제에는 문구 회사가 행사를 , 회사는 홍보랍시고 모양의 커다란 마스코트 탈을 잔뜩 나눠 주었다.

탈을 뒤집어쓴 사람은 누구의 얼굴도 아니었으니, 복도든 교실이든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아무도 그를 붙들어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얼굴을 가린 버젓이 교정을 활보하는 이라니, 소율은 문득 붓을 놓지 않았다던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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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축제의 마지막 순서는 학년이 뒤섞여 숨는 .

붙잡히면 우스꽝스러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은 꺅꺅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소율은 숨는 척하며, 인파 사이를 어슬렁대는 하나만을 눈으로 좇았다.

아니나 다를까, 탈을 그림자는 축제의 소란을 등지고 슬그머니 교문을 빠져나갔다.

소율은 직감했다.

그가 향하는 학교가 아니라,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낡은 였다.

훔친 돈으로 바꿀 있는 곳은 거기뿐이라는 걸, 그녀는 이미 며칠 전에 헤아려 경찰에 귀띔해 터였다.

어둠 속에는, 며칠을 허탕 경찰들이 이번에는 숨을 죽인 기다리고 있었다.

탈이 벗겨지는 순간, 오랜 준비도 치밀한 계획도 한꺼번에 돌아갔다.

그는 발로 함정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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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뜻밖에도 학교의 이름난 이었다.

며칠 전, 소율이 사건에 매달린다는 소문을 듣고 코웃음을 바로 아이이기도 했다.

" 탐정 놀이라니." 그때 그는 소율을 두고 그렇게 비아냥댔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사람들 앞에서 손목을 붙잡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이라는 이름도, 완벽하다 믿었던 계획도, 소율 앞에서는 .

그의 얼굴에 짙게 번진 것은 다름 아닌 .

언젠가 할아버지가 들려준, 죄를 뒤집어쓴 그것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다만 한쪽은 없이 뒤집어쓴 것이었고, 다른 한쪽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라는 점이 달랐다.

소율은 승리를 뽐내는 대신, 섬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던 오래 떠올렸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손녀의 가슴에 가만히 대더니 나직이 웃었다.

"이 심장은 씩씩하게도 뛰는구나."

그러고는 낡은 붓을 꺼내, 손녀의 이름 자를 정성껏 눌러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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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자유간접화법 (free indirect style)narration that voices a character's own thought directly, with no quotation marks

그렇지, 축제였다.

That was it — the festival.

문체 전환 (register shift)a deliberate shift from literary narration into a character's spoken register — here the grandfather's warm oral -단다 storytelling

"우리 집안에는 말이다, 억울하게 유배를 떠난 조상이 한 분 계셨단다."

"In our family, you know, there was once an ancestor sent off into exile, all unjustly."

반어·함축 (irony & subtext)meaning carried beneath the surface; two humiliations that look alike yet mean opposite things

다만 한쪽은 죄 없이 뒤집어쓴 것이었고, 다른 한쪽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라는 점이 달랐다.

Only, the one had been borne in innocence, and the other brought upon himself — that was the difference.

한자어 추상 (hanja-heavy abstraction)abstract Sino-Korean diction (無能, 屈辱, 完敗) that lends the prose conceptual weight

소율은 난생처음 제 무능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For the first time in her life, Soyul felt she was facing her own incompetence.

장단 리듬 (long/short sentence rhythm)a long, winding sentence deliberately broken by a short one for emphasis

화면을 넘기고 또 넘겨도 좀처럼 잡히지 않던 무언가가, 짝꿍의 한마디에 불현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 축제였다.

Something that would not be caught however she flipped the screen suddenly showed itself at her deskmate's remark. That was it — the festival.

-는 척하다 (pretend to)to pretend to do something; to act as if

소율은 숨는 척하며 코뿔소 탈을 눈으로 좇았다.

Pretending to hide, Soyul kept her eyes on the rhino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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