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봉투
The Thin Envelope
나는 올봄에 갓 초등학교 일한다.
정식 영양사도 교사도 아닌, 일 년짜리 이다.
매일 정오가 되면 커다란 국자로 아이들의 식판에 국을 퍼 .
많지 않다.
그래도 갓 지은 밥을 받아 든 아이들의 낯은, 얄팍한 급여 봉투 따위로는 도무지 않는 것이었다.
후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나는 잔반을 치우고 커다란 솥을 닦고 젖은 바닥을 밀며 텅 빈 홀로 정리하는데, 그렇게 김이 걷힌 조리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노라면 어김없이 생각이 밀려오곤 했다.
곧 코앞이었다.
시골 에는 여전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만 남아 계셨다.
형제들은 하나둘 짝을 찾아 떠났고, 나 또한 도시로 나와 좁은 방 한 칸에 몸을 부렸다.
그런 우리가 올해 그 집에 다 함께 모이기로 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1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나는 시장에 들러 붉은 두 송이를 골랐다.
내친김에 한 통 집어 들었다.
어머니의 어깨가 철마다 결리고 뻐근하다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기차역 앞에는 부부가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과일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나를 보고는 한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잠시 뒤 언니 부부까지 도착하자, 가 ",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하며 반갑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첫 탄 신입 사원처럼 상기된 얼굴로, 부모님 드릴 샀다며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인 내 벌이로는 엄두도 못 낼 선물이라, 나는 문득 내 얄팍한 월급 봉투가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많고 적음이 정성의 수는 없다고,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
그러나 그 말은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주문처럼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2
색이 바래고 페인트가 군데군데 일어난 낡은 대문을 밀자, 눈에 익은 마당이 나타났다.
그 작은 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는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아버지는 마당 한쪽 쪼그려 앉아, 채송화와 봉숭아 사이의 흙을 정성껏 매만지고 계셨다.
흙장난을 하던 문득 "이모, 이것 좀 봐요!" 하고 나를 소리쳐 불렀다.
아이의 손가락 끝에서는 한 마리가 쉼 없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아이가, 살아 꿈틀대는 그 작은 것 앞에서는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점심상이 차려졌다.
상 한가운데에는 아버지가 예나 지금이나 즐기시는, 노른자가 몰캉한 계란이 소복이 담겨 있었다.
수백 명 아이들에게 국을 나였지만, 어머니가 손수 낸 계란 한 알 앞에서는 까닭 없이 목이 메었다.
정작 밥에는 손도 대지 않고, 화면 속 의 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앳된 이 커다란 국수 그릇을 통째로 비우며 감탄사를 연발하자, 아이는 제 밥그릇은 잊은 듯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런 그만 보고 얼른 한술 뜨렴." 어머니의 나직한 말에, 입을 삐죽하더니 못 이기는 척 숟가락을 들었다.
Checkpoint quiz
3 questions on Part 3
식사를 마치고, 나는 사 온 어머니의 어깨에 조심스레 붙여 드렸다.
얇은 옷감 너머로 만져지는 어머니의 어깨는, 내 기억보다 한참이나 야위고 굽어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의 넓은 등에 잠들던 밤들이 떠올랐다.
그 등에 자라던 아이가 어느새 부모의 어깨를 주무르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아뜩하게 다가왔다.
아버지는 안방 낡은 서랍을 한참 뒤지시더니, 빛바랜 봉투 한 뭉치를 꺼내 오셨다.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가 시절에 받은 봉투들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받은 한 푼도 헐지 않고, 봉투마다 우리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고이 모아 두셨던 것이다.
오랜 세월에 너덜너덜해진 봉투를 어루만지며, 아버지가 나직이 입을 여셨다.
"느이가 어렸을 적에 말이다, 이 애비가 큰맘 먹고 딱 한 번 라는 걸 태워 준 적이 있단다."
놀이공원 앞에서 서로 먼저 타겠다고 와 다투던 그 봄날을, 아버지는 봉투 속 동전보다 더 오래 품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코끝이 시큰해져, 얼른 고개를 돌려 창밖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4
저녁 무렵, 우리 형제는 두 분 가슴에 붉은 을 나란히 달아 드렸다.
아버지는 마당 배경으로 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사진을 찍으려 다 같이 붙어 서자, 가 멋쩍은 얼굴로 "우리도 이제야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네요" 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이 낡은 이야말로 당신이 평생 지켜 온 유일한 하시며, 흐뭇한 눈으로 마당을 둘러보셨다.
자식들이 언젠가 번듯한 장만하더라도 이 집만은 부디 팔지 말라고, 아버지는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살아도, 명절이면 반드시 이 마당으로 돌아오자고 우리는 약속했다.
도시로 돌아온 밤, 나는 후의 텅 빈 홀로 앉아 오늘 하루를 오래 되짚었다.
의 월급 봉투는 여전히 얇았지만, 그 얇은 봉투 안에서 마음만은 이상하게 든든했다.
내일도 나는 그 갓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국을 정성껏 것이고, 그 아이들도 언젠가 오늘의 나처럼 말 앞에서 문득 오래 멈춰 서게 되겠지.
Checkpoint quiz
2 questions on Part 5
Vocabulary
Grammar notes
방과 후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나는 잔반을 치우고 커다란 솥을 닦고 젖은 바닥을 밀며 텅 빈 급식실을 홀로 정리하는데, 그렇게 김이 걷힌 조리대 앞에 서 있노라면 어김없이 어버이 생각이 밀려오곤 했다. 곧 어버이날이 코앞이었다.
After school, once the children have gone, I clear the leftovers, scrub the pots, mop the floor of the emptied cafeteria — and standing there, thoughts of my parents come flooding in. Parents' Day was right around the corner.
봉급의 많고 적음이 정성의 척도일 수는 없다고,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The size of a salary could be no measure of devotion — I repeated it to myself, over and over, inside.
그러나 되뇔수록 그 말은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주문처럼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다.
But the more I repeated it, the more the words just circled, hollow, like a charm meant to soothe myself.
"그런 먹방 그만 보고 얼른 한술 뜨렴." 어머니의 나직한 말에, 조카는 입을 삐죽하더니 숟가락을 들었다.
"Stop watching that mukbang and eat a bite, now," my mother said in a low voice, and the child pouted before picking up her spoon.
이 애비가 큰맘 먹고 딱 한 번 회전목마라는 걸 태워 준 적이 있단다.
This old dad splurged just once and put you on one of those carousel things, you know.
아버지는 자식들의 세뱃돈을 한 푼도 헐지 않고,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모아 두셨던 것이다.
The truth was, Father had not spent a coin of his children's New Year's money — he had written our names on each and kept them all a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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