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숙의 각서

TOPIK 5#55 · Travel & place

당숙의 각서

A Promise in a Poor Hand

Part 1

아버지는 그저 인사나 여쭙고 오라 했지만, 민수는 뒤에 접어 진짜 부탁을 알고 있었다.

혼자 지내시는 걱정이니, 낡은 바닷가 집을 정리하고 도시로 올라오시게 설득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말끝에, 웬만하면 받아 두라고 슬며시 덧붙이기까지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홀로 오른 이라, 차창 밖으로 스치는 낯선 산과 들이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시골 버스는 하루에 없어서, 그는 종점에서 낯선 사내와 택시를 .

가방 하나와 하나가 짐의 전부였다.

마을에 닿은 그는 작은 역의 들러 집을 물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오래된 개를 세놓으며 홀로 늙어 가고 있었다.

조카를 맞은 노인은 반색하며, 손수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저녁상을 그득히 차렸다.

따뜻한 밥상 앞에서, 민수는 끝내 아버지의 부탁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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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이튿날 아침, 조카의 손을 이끌고 마을의 두루 보여 주었다.

아침 안개가 걷힌 자리에 드러난 오랜 씻겨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담백했고, 정갈한 풍경 앞에서 민수는 문득 제가 지고 임무가 부끄러워졌다.

바닷가에서 사람은 바위에 붙은 함께 뜯었다.

민수가 우물물을 채워 오자, 짭짤한 손으로 그것을 받아 시원하게 들이켰다.

뜯은 하숙집 젊은 몫이었는데, 새댁은 그것을 알뜰히 씻어 젖먹이의 보드랍게 끓였다.

정리해 없앨 낡은 집이라던 아버지의 말이, 소박한 살림 곁에서 문득 무색해졌다.

오후에 다락에서 먼지 쌓인 상자를 끌어내리자, 갈피에서 빛바랜 사진 장이 떨어졌다.

사진 속에서 젊은 아버지가, 지금의 민수만 얼굴로 바닷가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고 자란 곳이 바로 마을이었음을, 민수는 그제야 실감으로 깨달았다.

그날 밤, 마을 흥정 소리와 오르는 좌판 사이를 걸으면서도 그는 끝내 아버지의 부탁을 다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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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주말 저녁, 하숙집 마당에서 마을 열렸다.

지난주 골목에서 부린 두고, 사람들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규칙을 정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디로 좌중을 다독이자, 팽팽하던 언성이 이내 누그러졌다.

분위기가 풀리자, 노인은 벽장 깊숙이 넣어 낡은 하나를 꺼내 조카에게 내밀었다.

“내가 젊어서 말이다, 이래 봬도 소문난 선수였단다.”

그러고는 전국 결승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팀을 우승으로 이끈 이야기를, 노인은 번이고 되풀이했다.

이것이 바로 우승의 , 당숙은 손바닥 위의 낡은 쇠붙이를 한참이나 어루만졌다.

그러나 우승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고향 바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노인은 굳이 자랑 삼아 덧붙이지 않았다.

민수는 저도 모르게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토록 생기 넘치는 노인을 어떻게 도시의 좁은 칸에 밀어 넣는단 말인가, 하는 물음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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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이튿날 저녁, 마을에는 조촐한 축제가 벌어졌다.

뜻밖에도 직접 메고 나서서, 구성진 가락으로 마당의 흥을 돋우었다.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둥글게 돌며 춤을 추었고, 민수도 어느새 속에 섞여 들었다.

축제가 파한 뒤, 당숙과 민수는 앉아 검은 밤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저 앞바다에서 내가 배를 부렸단다. 오래전 태풍에 폭삭 부서져서, 결국 떠나보냈지.”

“작년에는 낡은 트럭마저 버렸지만, 나는 후회 같은 없단다.”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린다는 말투 속에서, 정작 버리고 끌어안은 무언가를 민수는 어렴풋이 감지했다.

이윽고 당숙이 낮은 목소리로, 아비가 무슨 말을 전하라 보냈는지 안다고 내뱉었다.

민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무릎 위에 포갠 손만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노인이 벽장에서 종이 장을 꺼내더니, 수십 손으로 지독한 들이밀었고, 민수는 그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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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떠나기 전날, 조카를 절벽 아래 작은 데려갔다.

어린 시절 혼자만 알던 , 노인은 여태 아무에게도 보인 없다는 그곳에 조카와 마주 앉았다.

“네 아버지가 도시로 떠나던 날, 내가 줬단다. 집은 내가 지킬 테니, 언제든 돌아올 고향으로 남겨 두마 하고 말이다.”

“얘야, 정답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실은 때가, 사람 사는 일에는 더러 있단다.”

홀로 남은 이를 향한 염려가 도리어 뿌리를 뽑아내는 일이 수도 있다는 , 민수는 노인의 무심한 한마디에서 비로소 헤아렸다.

당숙은 낡은 곱게 접어 조카의 손에 쥐여 주며, 이것을 아버지께 그대로 전하라고 일렀다.

대신, 민수는 삼십 년이나 묵은 약속 하나를 품에 안고 돌아가게 되었다.

떠나는 아침, 그는 길을 물었던 바로 앞에서 작별했다.

돌아오는 버스가 언덕을 넘을 무렵, 민수는 점점 멀어지는 마을의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낯선 남의 고향인 줄로만 알았던 그곳이 실은 아버지가 두고 뿌리이자 언젠가 제가 돌아올 자리였음을, 그는 차창에 이마를 기댄 조용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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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bulary

Grammar notes

~단다/~란다a warm elder-to-child storytelling ending: '(let me tell you,) it is that…'; the great-uncle's affectionate spoken voice

이래 봬도 소문난 핸드볼 선수였단다.

I may not look it, but I was a handball player of some renown, you know.

문체 전환 (register shift)deliberate switching between the literary 한다체 narration and the great-uncle's warm colloquial speech, so the two voices stay distinct

이 집은 내가 지킬 테니, 언제든 돌아올 고향으로 남겨 두마.

I'll keep this house, so leave it as a hometown you can come back to anytime.

반어·함축 (irony & subtext)meaning carried beneath the surface—a line that quietly says the opposite of its literal words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린다는 그 말투 속에서, 정작 못 버리고 끌어안은 무언가를 민수는 어렴풋이 감지했다.

In that tone—that he cast off without a pang whatever had to be cast off—Minsu dimly sensed something he had, in truth, never let go of.

한자어 추상 (hanja-heavy abstraction)abstract Sino-Korean diction that gives the reflective passages conceptual weight

홀로 남은 이를 향한 염려가 도리어 그 뿌리를 뽑아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민수는 비로소 헤아렸다.

Only now did Minsu grasp the paradox: that concern for a man left on his own could instead become the very thing that tore up his roots.

장단 리듬 (long/short sentence rhythm)deliberate alternation of a long, multi-clause sentence with a short one for cadence (e.g., the sweeping s12 followed by the brief s13)

바닷가에서 두 사람은 바위에 붙은 해초를 함께 뜯었다.

At the shore, the two of them gathered the seaweed clinging to the r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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